[씨네21 리뷰]
[리뷰] ‘메모리아’, 충돌처럼 부딪혀오는 기억의 지층들. 서서히 번지는 세계의 파동
2022-12-28
글 : 김예솔비

새벽의 적막을 깨는 ‘쿵’ 소리에 제시카(틸다 스윈튼)는 잠에서 깬다. 그날 이후 ‘쿵’ 소리는 제시카의 일상 속에 침투하며 그녀의 삶에 이상한 구멍을 낸다. 제시카의 기억은 다른 이들과 조금씩 어긋나며 혼선을 겪는다. 제시카는 소리의 가장 깊숙한 비밀이 그녀를 잡아끄는 것처럼 움직일 뿐이다. 각성과 잠 사이에서 흐릿하게 배회하는 유령. 그녀는 사운드 엔지니어를 찾아가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재현하거나 병원을 방문한다. 소리의 정체를 찾는 치유의 여정은 터널의 건설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을 탐구하는 고고학적 작업과 희미한 연결을 띤 채 이어진다.

<메모리아>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처음으로 태국과 정글을 벗어나 콜롬비아에서 만든 영화다. 한낮의 환각 같은 열대우림의 더위 없이도 여전히 환상에 대한 영화가 유효할까. <메모리아>는 이에 대한 고민과 답변처럼 보인다. 수면과 꿈에 대한 관심(<찬란함의 무덤> ), 전반부와 후반부로 느슨하게 나뉜 구조(<징후와 세기> <열대병>)와 같은 전작들의 흔적이 인장처럼 남아 있다. 영화는 느리고 숏들은 정제되어 있어 보는 데 인내를 요하는 듯하지만 서사는 의외로 단순하다. 영화는 ‘쿵’ 소리의 미스터리와 이를 추적하는 여정이라는 고전적인 플롯을 충실히 따르며, 마지막에 이르러 시간의 지층이 누적된 기억의 저장고와 같은 소리의 정체에 도달한다. 아피찻퐁의 영화들은 신화와 꿈, 경계, 환상과 같은 붕 뜬 것에 골몰하지만 동시에 꽤나 정치적이다. <찬란함의 무덤>에서 일종의 체념증후군처럼 끊임없이 잠에 빠져들었던 군인들은 쿠데타가 한창이었던 태국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대한 모종의 비유이기도 했다. 한편 콜롬비아 또한 최근까지 내전을 겪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장소다. 그가 이곳에서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은 태국에 대한 이야기를 태국 바깥에서 하기 위한 방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피찻퐁은 콜롬비아에 내재된 무거운 기억들, 정치적 기억들에 매료되었으나 콜롬비아에 뿌리가 없는 자신이 그것들을 보여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한다.(<FILO> 13호) 그는 역사의 구체적인 상을 소환하는 대신 소리의 파동이라는 물리적 성질을 통해 인류가 쌓아온 기억의 퇴적을 감각적으로 물화한다.

무엇보다 아피찻퐁은 이러한 고고학적 작업을 영화의 사운드를 통해 시도한다. 붙잡을 수 없이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소리의 일시성은 오히려 영화의 허구를 확정 짓지 않고 증폭시키는 장치가 된다. <메모리아>는 청각적 충돌이 자아내는 얼얼함 속에서 확장되는 영화적 허구를 감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두터운 역사적 기억의 존재감을 감지하는 관객의 역량을 자극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 체험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나는 일종의 저장장치예요. 그리고 당신은 안테나군요”

소리의 파동을 따라 숲으로 이끌려온 제시카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에르난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남자의 기억과 제사카가 듣는 소리는 모종의 관련이 있다.

CHECK POINT

자크 투르뇌르,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1943)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밝혔듯 제시카라는 이름은 바로 이 영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자크 투르뇌르 영화의 제시카 또한 무언가를 향해 이끌린다는 본성을 공유한다. 한발 더 나아가자면 이 영화의 리메이크를 시도했던 페드로 코스타의 <용암의 집>(1994) 또한 가져다둘 수 있을 것이다. 세 영화를 나란히 두는 것만으로 기이한 힘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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