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비평] ‘재벌집 막내아들’, 회귀·빙의·환생의 서사
2023-01-04
글 : 조혜영 (영화평론가)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연출 정대윤)이 14화에서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2022년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드라마는 1화에서 주인공의 억울한 죽음과 환생 설정을 공개한 후 ‘순양그룹 회장 되기’라는 목표를 향해 빠른 전개로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동명의 원작 웹소설(2017년 문피아 연재, 산경)과 드라마의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순양그룹이라는 재벌 기업에서 오너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40대 윤현우 팀장은 비자금 세탁 중 살해되고 순양 재벌가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1987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살게 된 윤현우/진도준(송중기)은 자신을 용도폐기 가능한 머슴 취급했던 재벌 2세와 3세들을 하나씩 격파하고 회장 자리에 앉는다.

‘회·빙·환’이 유행하는 이유

<재벌집 막내아들>의 서사 구조이자 서브 장르인 회귀·빙의·환생(회·빙·환)은 2010년대 초부터 웹소설의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 드라마 및 영화로 제작되면서 웹소설 플랫폼을 넘어 보다 대중적인 장르가 되고 있다. 2022년만 해도 <재벌집 막내아들> 외에 <어게인 마이 라이프>(SBS, 연출 한철수·김용민)와 <금수저>(MBC, 연출 송현욱)가 회·빙·환 설정을 이용했다. 세 드라마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주인공들은 모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 덕을 보지 못한다. 둘째,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진 불공정한 사회에 절망한다. 셋째, 주인공은 복수와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기적이며 돈에 집착하는 반영웅적 성격을 갖는다. 때때로 이타성은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묘사된다. 넷째, 죽음은 종결이나 파국이 아니라 ‘안전하게’ 실패할 기회이자 무적으로 성장할 발판이다. 타인으로 한번의 환생(<재벌집 막내아들>)이냐, 자신으로 돌아오는 수차례의 반복된 회귀(<어게인 마이 라이프>)냐, 상호 교환되는 정체성 빙의(<금수저>)냐에 따라 죽음의 의미와 활용은 다를 수 있다. 다섯째, 존재론적 변형은 없다. 이전 생의 의식과 기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야 한다.

이러한 특징을 <재벌집 막내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회·빙·환의 유행은 ‘억울함과 후회’라는 현재 우리 사회의 지배적 정서를 반영한다. 근대문학에서 억울함은 기존 체제를 향한 분노와 비판으로, 후회는 자기 성찰로 이어지곤 했다. 포스트모던 서사를 우아하게 차용하면서도 근대문학의 감수성을 보여준 <박하사탕>(감독 이창동)이 그렇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던 2000년 1월1일 개봉한 이 영화는 기찻길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부르짖는 한 중년 남자의 인생을 따라 오욕의 한국 근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영화의 회귀는 급진적 반성을 통해 기어코 역사적 진보를 이루겠다는 욕망에 의해 작동한다. 그러나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억울함은 ‘나’만 잘되고 상대는 망하는 식으로 복수하는 그리고 후회는 ‘나’만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주식 투자, 기업 M&A로 부자가 되는 ‘사이다 서사’로 이어진다. 후회의 감정은 ‘그때 주식(부동산)을 샀어야(팔았어야) 했는데…’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독점’이다. 독점할 때 정보의 가치도 높아지고 통제의 쾌락도 커진다. 정보독점은 몰래 훔쳐보며 시선의 주체 자리를 독점하고 통제의 힘을 즐기는 관음증에 가깝다. 그렇게 미래의 정보는 인지자본주의 사회의 절대적 능력이자 권력이며 서사적 쾌락이 된다. 그런 면에서 진양철(이성민)의 둘째 아들 진동기(조한철)와 함께 일하는 백 상무(강길우)는 일종의 이스터에그다. 백 상무는 회계사 출신 애널리스트지만 늘 사주풀이로 사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둘 모두 미래를 예측하고 경쟁적으로 정보를 독점해 돈을 번다.

사실 진도준이 갖고 있는 정보는 인생 2회차라면 쉽게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 결과, IMF, 신용카드 대란, 분당 신도시, 델과 아마존의 성공은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굵직굵직한 정보다. 굳이 복잡한 부동산 역사나 한국식 자본주의의 경제구조를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일어난 단편적 정보를 재확인하는 정도다. 그런 면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은 2030보다 4050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 시청자들은 진도준과 동일하게 이미 잘 알고 있는 정보를 매개해 그에게 동일시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활용한 진도준의 실패 없는 연이은 성공은 시청자들의 욕망을 대리하며 통쾌함을 안겨준다.

회·빙·환 장르 역시 알고 있는 설정의 반복이다. 어떻게 환생이 가능하고 하필이면 왜 진도준인지, 진짜 진도준의 의식은 어디로 간 건지, 40대가 10대로 사는 것의 부대낌은 없는지 등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복된 세계관의 설정이며 사전에 공유된 정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은 정체성이나 욕망의 갈등을 겪지 않는다. 진도준이 사춘기의 방황이나 유흥, 친밀한 관계에 전혀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그저 성실근면하게 ‘회장 되기’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린 것처럼 시청자와 독자도 산만함 없이 서사를 경제적으로 소비한다. 심지어 웹소설은 문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영화가 신보다 숏과 프레임에 집중하는 것처럼 의미 덩어리인 문단보다는 정보 단위인 문장으로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히토 슈타이얼이 빠른 유통과 광역 수용, 즉 바이럴이 필수적인 디지털 정보화 시대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를 주장했던 것처럼 웹소설에서 ‘빈곤한 서사’는 핵심 미학이 된다.

안전하다는 감각

<재벌집 막내아들>의 회·빙·환 구조가 제공하는 또 하나의 보상은 안전의 감각이다. 끊임없는 재난과 위기, 과거의 ‘나’와도 경쟁해야 하는 강제된 평생 성장,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불안, 피로, 죽음을 일상으로 만든다. 진도준은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를 알고 대비하며 실패 없는 성장을 할 것이기에 아무리 서사적 위기가 와도 안전하다. 그에 덧붙여 캐릭터 자아(진도준)와 플레이어 자아(윤현우)의 메타 구조는 시청자/독자들이 언제든 안전한 곳으로 회피할 수 있도록 만든다. 메타 구조는 이전과 달리 매체나 맥락의 성찰보다는 피난처를 제공하는 장치가 된다. 또한 소소한 개혁은 있어도 큰 얼개, 즉 체제와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진도준은 엄마의 죽음을 막아보려 하지만 운명을 바꿀 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는 체제 변화에 도전하지 않는 도덕적 알리바이가 된다. 사실 진도준이 회장이 되려면 재벌은 사라져선 안된다. 기존 체제와 자기 존재 모두 유지보수만이 정답이 된다. 진도준은 ‘(불행한 일을 겪는 게) 나만 아니면 돼’를 넘어 ‘나만 잘 살아야 해’로 넘어간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함께 잘 사는 것’은 불안하다. 함께 잘 살면 언제든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죽음을 통해 타인이나 세계를 구하려 했던 할리우드의 SF 회귀물 <소스 코드>와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도 거리가 있다. 장르는 보수적이지만 지루한 반복을 통해 변형과 이탈을 하는 형식 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의 반복’ 형식을 갖고 있는 회·빙·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기대해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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