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젠틀맨’ 김경원 감독,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카타르시스”
2023-01-05
글 : 정재현

흥신소 사장 현수(주지훈)는 누명을 벗고자 검사를 사칭한다. 엘리트 검사 화진(최성은)은 그런 현수를 의심하지만 이내 현수와 자신이 맞서야 할 상대가 도훈(박성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와 공조한다. 김경원 감독은 범죄 오락물 <젠틀맨>의 제작 과정에 대해 “한 장면 한 장면 새로운 방식은 없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며 찍었다. 빤한 걸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화를 향한 감독의 변처럼, 김경원 감독은 무언가 다른 걸 만들고자 했던 <젠틀맨>의 제작기를 적확한 언어로, 그러면서도 빤하지 않게 들려주었다.

- 어떤 경위로 이야기를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유흥가와 유흥가 뒷골목에 있을 법한 간판 그리고 그 밑을 지나가는 한 남자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었다. 큰 틀을 잡은 후 캐릭터를 떠올렸다. 혈연, 지연 등 특정 관계를 맺지 않은 타인에게도 호의를 베풀 줄 알고, 호의를 베푸는 과정에서 큰 난관이 닥쳐도 이를 순수한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 영화를 본 관객이 프레시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섰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부터 염두에 둔 부분인가.

=그렇다.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카타르시스다. <젠틀맨>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통해 관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존재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흐뭇하게 극장을 나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이든 현실이든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이권과 무관한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젠틀맨> 속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다. 나와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관객이 우리 영화의 캐릭터를 볼 때 저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과 희망을 품길 바랐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호의를 입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길 바랐다.

- 출연배우들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 공간이 주는 힘을 많이 언급했다.

=연출자인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공간이 주는 생활감이다. 모두에게 강하게 주지한 것이 <젠틀맨>은 판타지와 리얼리즘 사이에 끼어 있는 영화란 점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도 그 경계에 맞췄으면 했다. 가령 화진의 검사실엔 기둥이 없었는데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기둥을 세웠다. 도훈의 공간 또한 도자기가 전시된 현실적 공간이 있고 그 공간 너머 판타지적으로 구현한 공간이 있는데 그 사이에도 두겹짜리 기둥을 둬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표하고자 했다.

- 시나리오에 신별로 분위기와 어울리는 구체적인 음악이 명시되어 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 작성 단계부터 이야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곧바로 맞붙는 편인가.

=보통 이야기를 다 써놓고 어떤 음악이 들어가면 좋을지 구상하는 편이다. 이번 작품의 경우 로큰롤에 기반한 펑키 리듬을 염두에 두며 시나리오를 썼다. 다만 차량 전복 사고 장면에 깔리는 <My Way>의 경우 노래를 아예 틀어놓고 장면을 구상했다.

- 언급한 차량 전복 사고 장면은 영화 초반 관객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테이크를 여러 번 거치며 굉장히 오래 찍었다고 들었다.

=그 장면을 정말 잘 찍고 싶었다. 그 장면이 판타지와 리얼리즘 사이에 낀 우리 영화의 톤을 잡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테이크를 많이 가며 우리가 영화를 쉽게 찍지 않았다는 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스탭들끼리 어떤 장면을 찍든 새롭지 않은 부분이 없도록, 새로움을 보일 수 있는 장면은 확실히 새롭게 찍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테이크를 많이 간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찍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선 자신이 있다.

- <젠틀맨> 속 캐릭터들은 각자의 매력이 확고하다.

=현수는 내가 좋아하는 유의 사람이다. 상황이 뒤죽박죽인데도 여유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내가 그런 사람이 못 돼서 그런지 현수 같은 사람을 보면 위안을 받는다. 화진은 올곧다. 화진 같은 사람을 보면 안정감을 얻는다. 도훈이 내 편이라면 정말 듬직할 것 같다. 그리고 도훈은 탐미적이다. 탐미성을 지닌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아 재밌다.

- 강아지 배우 윙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 그 친구에게 연기 지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견주밖에 없어 견주에게 디렉팅을 부탁드렸다. 견주의 디렉팅을 받은 윙을 보고 감탄하는 일밖에 할 게 없을 정도였다. 윙은 천천히 걸어달라 하면 천천히 걷고 뛰어 오라고 주문하면 정말 뛰어왔다. 그걸 실시간으로 볼 때의 놀라움이 상당했다.

- 전작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문종원 배우, <젠틀맨>의 강홍석 배우 등 무대 출신 배우들이 영화에 자주 기용된다.

= 무대 출신 배우들이 스크린에 왔을 때 드러나는 특유의 이질감을 굉장히 좋아한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느끼함이 있는데, 그 이상한 느끼함이 너무 좋다. (웃음)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다른 결의 연기를 최대한 자제해 달라 부탁하긴 한다. 그런데 그들이 무대 연기의 버릇을 벗기 위해 노력할 때 나오는 대사 톤이 있다. 그 톤과 더불어 그들이 버리지 못한 무대식 발성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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