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림>의 속편인 <스크림2>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 대해 수업 중이던 대학생들이 “흥! 속편은 어차피 다 망하게 마련이야!”라며 소포모어 징크스(성공적인 첫 작품이나 활동에 비해 그에 이은 작품, 활동이 부진한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에 대해 이런저런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속편이니까 좀 봐달라는 엄살이 귀엽다.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존재할 수 없다는 학생들의 자조 섞인 발언이 이어지자 한 학생이 발끈하며 반례를 제시한다. <에이리언2>. 음, 이건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교실 속 학생들의 의견 역시 반반으로 갈린다. 리들리 스콧 팬들의 공세에 몰린 학생은 새로운 예시를 꺼내든다.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 그러자 옆에 있던 학생이 빈정댄다. “아, 제임스 카메론의 팬이셨구먼.”
아마도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던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관람한 적이 있지만 초등학생 아이가 영화감독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리는 없으니까. <에이리언2>와 <터미네이터>와 <타이타닉>을 모두 같은 사람이 연출했다는 사실은 그보다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다크 엔젤>이라는 제목의 TV시리즈가 방영될 때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드라마에 자기 이름을 붙이나 궁금했다. 그런 건 원래 성룡이랑 이연걸만 할 수 있는 거였다고.
카메론 이 사람, 속편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감독 데뷔작부터가 <피라냐2>이고, <람보2>의 각본을 썼고, <에이리언2>를 연출했으며, 별로 내키진 않았던 모양이지만 <터미네이터>도 결국 속편을 만들었다. 심지어 <아바타>는 5편까지 만들겠다질 않나, <알리타: 배틀 엔젤> 속편에 대한 미련도 여전히 잔뜩 남은 모양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나뉘겠지만, 나는 <에이리언>도 <터미네이터>도 1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카메론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속편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속편이 필요한 작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완벽하게 마무리된 작품들이었으니까. 솔직히 카메론이 만들 수 있는 속편 중에 제일 재미있을 만한 작품은 <타이타닉2>가 아닐까? 그건 어떻게 만들어도 정말 흥미로울 텐데.
<에이리언2>는 속편이라기엔 좀 반칙 같은 작품이다. 1편과 공통점이라곤 에일리언과 시고니 위버밖에 없지 않은가. 전작이 폐쇄된 우주선에서 죽일 수 없는 괴물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생존담이라면, 카메론의 속편은 우주 해병 침략자가 외계 토착 생물과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인공지능 기관총이 시원시원하게 외계인의 머리를 터뜨리는 장면들을 보라. 이들은 외계인의 둥지에 불을 질러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들을 학살하기까지 한다. 카메론은 이 시리즈를 액션영화로 바꿔놓았고, 이후 <에이리언> 시리즈는 작품의 아이덴티티라 할 만한 뼈대를 갖추지 못한 채 흐느적대며 해파리처럼 연출가 사이를 표류하게 된다. 그게 개성이라면 개성일 수도 있지만. <람보2>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명분 없는 전쟁에서 돌아와 현실 세계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군인은 다시 전장으로 끌려가 양손에 육중한 기관총을 쥐고 반공의 용사가 되어버린다. 상업적으로 꽤 재미있는 영화가 탄생했지만, 캐릭터로서 람보의 수명은 2편을 정점으로 점차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만다.
카메론 속편의 법칙은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미래에서 온 크롬빛 낙태 기계는 정상 가족 신화를 수호하기 위한 아빠 로봇이 되고, 닫힌 시간 곡선에 갇혀 결코 바뀌지 않을 운명 앞에 마주서야 했던 사라 코너의 결기는 어쩌면 새롭게 쓰여질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윤색된다. 둘은 너무나 다른 영화다. 카메론 이후 <터미네이터> 속편들의 실패는 예정된 운명이었을 것이다. 충돌하는 1편과 2편 사이에서 어느 노선을 따라야 할지 애매해져 버렸으니까. 카메론은 두편의 <터미네이터> 영화를 통해 같은 아이디어로 선보일 수 있는 양극단의 가능성을 모조리 소진해버렸다. 어설프게 두 영화의 장점을 봉합하려던 시도들은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결과물만 낳았다.
오랜 방황을 거쳐 그가 다시 제작자로 참여한 속편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카메론은 원작이 갖고 있는 시대성의 한계를 개선해보려 노력한다. 낙태도 임신도 모성애 신화도 없는 메시아 출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멋진 리메이크지만 솔직히 이야기 재료가 소진된 티가 났다. 속편마다 비슷비슷한 아이디어가 재탕되는 걸 보면 ‘터미네이터’와 ‘스카이넷’을 재료로 더 신선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에 <아바타>의 속편이 개봉했는데도 나는 딱히 극장에 보러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미 판도라 행성을 무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도 어슐러 르 귄 소설과 서부극을 적당히 짜깁기한 이야기 같았는데 그걸 3시간10분이나 또 반복한다고 하니 상상만으로 이미 지쳐버렸다. 이걸 세편이나 더 만든다고? 그 막대한 제작비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비주얼과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날려버린 기회비용을 생각하니 속이 터진다.
제임스 카메론은 분명 굉장한 속편들을 만들어내는 거장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쥐어짜 소진해버리는 시리즈 킬러이기도 한 것 같다. 카메론 입장에선 이런 말을 듣는 게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본인이 워낙 영화를 잘 만들어놔서 그런 것을. 그러니까 <아바타> 속편 같은 거 그만 만들고 어서 신작이나 내놓으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