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비평]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제페토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23-01-18
글 : 김철홍 (평론가)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 나오는 동화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동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우리의 머릿속에 <피노키오>의 줄거리는 희미해져 있지만, 제페토가 피노키오에게 했던 거짓말만큼은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바로 “거짓말을 하면 네 코가 길어질 거야”라는 거짓말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짓말’이라는 말과 ‘가장 유명한 동화’라는 말은 같은 말일 수도 있다. 동화 혹은 넓게 봐서 픽션이라는 것은 결국엔 전부 거짓, 즉 가짜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짓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동화는 선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형제 자매들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게 하기 위해, 나쁜 일에는 벌이, 착한 일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창작되어왔다. 제페토의 ‘코가 길어진다는 거짓말’ 역시 그 목적은 같다. 제페토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피노키오를 ‘굿 보이’로, 아니 진짜 사람으로 변화시키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 <피노키오>는 거짓을 통해 진짜를 담아내려는 창작자의 욕망이 뼈대를 드러내놓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피노키오를 부활시킨 이유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를 말하기 전에 <피노키오>와 픽션의 목표에 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은 까닭이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피노키오를 선택한 이유가 이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허구의 생명체도 스스럼없이 창조해냈던 델 토로가 이미 많은 창작자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바 있는 피노키오를 ‘되살려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더해 델 토로가 이 픽션을 통해 만들어내고 싶은 변화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물론 기예르모 델 토로는 관객의 어떤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은 아니다. 그는 거짓이 도출해낸 결과보다는, 거짓의 외양이나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몰두해왔던 창작자에 속한다. 그의 대표작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역시 그러했다. 가상의 해양 생명체와 그것이 사랑이라는 진짜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물로 표현해낸 이 영화는, 델 토로가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노골적으로 표출된 영화였다. 그런 그가 가짜를 통해 진짜를 창조하려는 제페토의 사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극 초반,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의 시작이 제페토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친절히 알려준다. 원작과 달리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크리켓(이완 맥그리거)을 통해서다. 매혹적인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작업 환경을 찾고 있던 크리켓은, 결국 제페토(데이비드 브래들리)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크리처 피노키오의 심장에서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그런 크리켓이 델 토로의 분신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극중 크리켓의 행적은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의 창작자인 델 토로가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크리켓이 피노키오(그레고리 맨)를 “착한 존재가 되도록”(to be good) 이끌어주라는 푸른 요정(틸다 스윈튼)의 부탁을 최선을 다해 이행할 뿐만 아니라, 영화 말미에 소원을 빌어 죽은 피노키오를 부활시키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부활의 주체가 요정이 아닌 크리켓이라는 점이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가 가장 널리 알려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버전의 <피노키오>(1940)와 특별히 다른 부분이 바로 이 피노키오의 부활과 관련한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선 피노키오의 선함에 감복한 요정이 자진해서 피노키오를 되살려내는 반면,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에선 크리켓이 요정과의 거래를 통해 획득한 소원권을 이용함으로써 부활이 이루어진다. 사실 부활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극중 피노키오는 여러 번 다시 살아난다. 죽음의 요정은 피노키오의 부활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피노키오는 어쨌든 부활한다. 말하자면 부활은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에서 가장 특징적인 무언가이다. 부활은 영화 내에서만 눈에 띄는 무언가가 아니다. 델 토로의 분신인 크리켓이 피노키오를 되살려내는 모습에서, 영화 바깥에서 피노키오 이야기에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델 토로의 모습이 역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화를 보기 전과 후에 똑같은 질문을 두번 반복하게 된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피노키오(이야기)를 부활시킨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 말이다.

제페토의 깨달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수공예 작업을 통해 제작된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은 참으로 절묘하게 느껴진다. 모형 인간의 순간순간을 다듬고 이음으로써 거짓을 진짜로 변모시키는 스톱모션의 제작 과정이, 영화 속 실제 피노키오가 진짜 소년이 되는 이야기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피노키오’라는 말이 과연 말이 되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가 따지고 들면 들수록 거짓과 실제에 대한 질문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영화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델 토로가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나 만들어내고 싶은 현실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시작한 질문의 과정이었지만, 그 끝에 다다른 지금 여전히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델 토로 본인은 그 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그가 마치 피노키오만큼은 반드시 한땀 한땀 손으로 제작했어야 했다는 것처럼, 무려 15년에 걸쳐 이 영화를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정말로 특정한 결과를 위해 피노키오를 부활시킨 것이라면 이와 같은 지난한 과정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흡사 오로지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술에 취해 인형을 만들었던 제페토처럼, 어떤 결과를 바라지 않은 채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델 토로의 모습은, 영화 후반 제페토의 마지막 깨달음과 묘하게 맞닿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만든 피노키오가 어떤 삶을 살지, 그 결과가 진짜일지 가짜일지에 대해 더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제페토의 깨달음 말이다. “이젠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말아라. 네 모습 그대로 살아라.” 제페토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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