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두 글자 제목의 영화가 유행인가. <교섭> <유령> <정이> <밀수> <피랍> <드림> <승부> <휴가> <사흘> <파묘> <타겟> <탈주>…. 개봉이 가까워지면 부제가 붙거나 변경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간결한 제목이 장문의 문장형 제목보다 외우기 수월해 좋다(물론 원고를 쓸 때는 몇번만 언급해도 글량을 채워주는 긴 제목의 영화가 고마울 때도 있다). 30~40대 남성 관객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보다 앞서서 10~20대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조용히 장기 상영에 돌입해 흥행에 성공한 일본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경우 마치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다음날이면 이 영화의 제목을 까먹게 되는데, 이와 유사한 기억력 테스트형 제목의 영화로는 여러 시제가 등장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든지 낯선 청유형 문장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같은 영화가 있다. 다행히 이번 설 연휴 극장에 가선 영화의 제목을 정확히 외우지 못해 난감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심플한 두 글자 제목의 한국영화 두편이 극장에서 맞붙게 되어서다. 먼저 임순례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과 현빈이 주연한 <교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 구출 작전을 다룬 이야기다. 요르단에서 진행한 해외 로케이션을 통해 중동의 낯설고 매력적인 풍광 속 시원한 액션이 쾌감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반면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 <유령>은 밀실 추리극으로 시작해 뜨거운 액션으로 나아가는 영화다. 이해영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시원하게 깨부수고 나와서 맞이하는 찬란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두 영화 모두 배우들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임순례, 이해영 감독도 인터뷰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들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잊지 않았다.
이번주 신작 시리즈 특집 기사에서도 여러 감독들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로 ‘배우들’을 꼽았다.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심심한 답변 축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캐스팅은 작품의 시작이자 끝인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에 소개하는 신작 시리즈 중에선 <신성한 이혼>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 역을 맡은 조승우의 모습이 특히 궁금하고, <악귀>로 손을 맞잡은 김은희 작가와 김태리의 만남도 무척 설레고, <종이달>의 김서형, 유선, 서영희의 조합에선 어떤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지 기대되고, <박하경 여행기>는 이종필 감독이 배우 이나영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든 티가 폴폴 난다. 이외에도 <이로운 사기> <모범택시2> <레이스> <사랑이라 말해요> <연인> 등 9편의 신작 시리즈 감독·PD들을 만나 캐스팅부터 관전 포인트까지 소상히 들었다. 다채로운 소재와 형식과 장르로 무장한, 그래서 우리를 설레게 할 시리즈들이 올해도 가득해 보인다.
P.S.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를 쓴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의 임소연 교수가 ‘디스토피아로부터’의 필자로 합류해 첫 연재를 시작했다. ‘기술의 외형/몸’을 주제로 한 임소연 교수의 흥미로운 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