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물의 길> 관객수가 900만명을 돌파하고, 모두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는 것 같은 요즘, 다른 한쪽에서 은근히 뜨겁게 타오르는 장르가 있다. TV조선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과 MBN <불타는 트롯맨>이 거의 동시에 막을 올린 것이다. 초반 시청률은 전자가 압승을 거두었지만, <내일은 미스터트롯> 제작진이 방송사를 옮겨 내놓은 후자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가슴에 크게 숫자를 써붙인 트레이닝복 차림의 참가자들 위로 “단 하나만, 살아남는다”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불타는 트롯맨>의 오프닝은 <오징어 게임>의 노골적인 오마주다.
<오징어 게임>의 영희 인형만큼이나 거대하고 생뚱맞아 보이는 동상 ‘트맨’으로부터 출발한 투명 공이 ‘최첨단 AI 시스템’을 통해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 다음, 천장에서 쏟아지는 5만원 뭉치로 기본 상금 3억원을 채워넣는다. “여러분! 3억원이! 쌓이고! 있습니다!”라는 진행자의 열띤 목소리, “키워주세요!”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바닥에 큰절을 하는 100여명의 참가자들, 연예인 심사위원단의 한표가 10만원으로 환산되어 무대가 끝날 때마다 새롭게 지폐가 날리며 상금이 추가되는 기이한 스펙터클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다. 돈으로 이어지는, 눈길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참가자들은 구릿빛 복근을 드러내고, 장미꽃을 입에 물며, 가슴에서 빨간 종이 하트를 꺼내 날린다. 풋풋함은 트롯맨의 미덕이 될 수 없다. KBS <전국노래자랑>과 제천박달가요제 수상 경력 정도는 있어야 ‘트롯 엘리트’라 말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한 세계에서 단련된 이들의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이 쇼의 재미는 다양한 타입의 남자들이 노래는 물론 마임, 댄스, 마당놀이, 물 쇼에 이르기까지 중장년층 여성들을 위해 온갖 즐거움을 제공하려 온몸을 불사르는 모습을 관전하는 데 있다. 임영웅을 잇는 ‘국민 새 아빠’는 누가 될지 예상해보면서 말이다.
CHECK POINT
“어디! 여자가~.” 첫 소절을 듣고 경계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가사는 “함부로 주방에 들어오려고 해~”. 팝페라 가수 신명근이 긴 망토를 열어젖히자 주걱, 뒤집개, 수세미가 줄줄이 등장했다. 국자를 꺼내든 그가 “힘이 센 남편은 전골냄비를 들 테니 자기는 리모컨 들고 TV나 보면 돼”라고 노래하자 여성 방청객들은 일제히 열광했다. 빨래도 내가 다 하겠다, 명절날 음식은 같이하자며 미소와 손 키스를 보내는 미남이라니, 평화로운 설을 보내고 싶은 남편들에게 <나의 영토> 무대 영상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