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위대하고 뭉클한 전언, 아름다운 설원 풍경과 함께
2023-01-25
글 : 박정원 (영화평론가)

시베리아 툰드라에서 천년 넘게 순록들을 유목하며 순록들의 피와 살로 살아온 예이츠 부족이 있다. 예이츠 부족의 한 가족인 소녀 그리샤(이윤지)와 남동생 꼴랴(김서영), 엄마 슈라(김예은), 아빠 톡챠(강길우)는 하루하루를 고단하지만 단란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작스레 쓰러지고, 연방군 대위 블라디미르(이관목)가 사냥꾼 바자크(송철호)와 함께 이들 부족의 보금자리를 위협해온다. 아빠가 약을 구하러 도시에 간 사이, 그리샤는 태고의 숲을 천년 넘게 홀로 지키고 있다는 전설 속 숲의 주인 붉은 곰(이용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순록 세로데토와 함께 북극성을 따라 길을 떠난다. 몰래 누나를 쫓아온 꼴랴도 그리샤의 여정에 합세하고, 이들 남매는 추위와 역경을 헤치며 머나먼 길에 나선다. 한편 땅의 완전한 소유와 통제를 위해 숲의 주인을 해치려는 블라디미르 또한 붉은 곰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 사는 예이츠 부족의 한 남매가 땅의 정령이자 숲의 주인인 ‘붉은 곰’을 만나러 가는 용감한 모험을 그려낸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다. 험난한 툰드라 설원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자연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지닌 두 집단이 등장하는데, 한쪽에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는 예이츠 부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 자연을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연방군이 있다. 이때 물리적인 지배를 넘어 정신적인 지배까지 목표로 하는 블라디미르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환경주의적 가치관을 돌이켜보게 만든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붉은 곰과 그리샤가 주고받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일련의 대화는 어린이 관객은 물론이고 어른 관객에게까지 깊은 여운을 남길 듯하다.

극중 순록과 함께 살아가는 예이츠 부족은 감독이 만들어낸 가상의 부족으로, 박재범 감독은 대학생 시절 보았던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전작 단편 작품들 속 바다와 사막에 이어 툰드라 설원이라는 색다른 도전에 나선 감독은 3년 넘는 제작 기간을 통해 설원과 숲, 오로라 같은 풍경과 그 속의 캐릭터를 생생히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섬세한 묘사와 자연스러운 모션으로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다. 광활한 대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다소 무게감 있는 소재가 스톱모션애니메이션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어우러지며 색다른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인간을 둘러싼 설원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붉은 핏방울, 붉은 열매의 색 대비 또한 인상적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이다.

“그리샤, 이 땅에 원한의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 그게 툰드라의 법칙이야.”

가족을 위협하는 블라디미르 무리를 왜 가만히 두냐는 그리샤의 질문에 대한 아빠의 대답으로,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 중 하나다.

CHECK POINT

<아름다운 비행>(감독 캐롤 발라드, 1996)

“나는 이 땅을 살아가며 이 땅에서 배운 것을 지켜나가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극중 그리샤의 대사는 캐롤 발라드 감독의 따뜻한 성장영화 <아름다운 비행> 속 용감한 소녀 에이미와도 제법 어울리는 문장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