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드한 컬러의 의상과 스타일로 캐릭터를 분명하게
<유령>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겨냥해야 했던 다섯 인물은 비주얼적인 변화를 거듭하며 각자의 성격과 기질을 드러낸다. 함현주 의상감독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동시대 인물을 표현한 방법과 다르게 구현하고 싶었다”라며 유럽으로 지역적 원천을 확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유리코는 유럽의 배우와 가수, 박차경은 퀴리 부인 등 당시 유럽의 지식층 여성, 쥰지는 탐정물 캐릭터를 차용했다. 이어 카이토는 영국 로열 패밀리의 귀족 이미지를, 천은호 계장은 프랑스 살롱 문화에 베이스를 둔 신사복을 바탕으로 의상을 제작했다. 큰 틀에서 복장은 작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새롭고 자유로운 방향에 맞추었지만, 단추 디자인이나 엠블럼 등은 역사 고증이 담긴 논문 등을 참고하여 디테일의 현실성을 높였다.
의상 색깔도 과감하게 선택했다. 함현주 의상감독은 “이해영 감독과 논의 끝에 영화 전반의 컬러톤을 비비드톤으로 맞추었다”며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 방안을 상기했다. “심리적 팽창감을 드러내기 위해 차경에겐 난색 계열을 썼고, 신경적 흥분이 높은 유리코에게는 오렌지와 핑크색을 부여했다. 쥰지는 남성 캐릭터 중 유일하게 사복을 입고 있어 컬러가 과감해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하에 비비드한 그린톤을 주었다. 동물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를 더한 가죽 소재의 코트다.”
의상만큼 분장에서도 캐릭터성을 드러내기 위해 신경을 썼다. 김현정 분장감독은 “행동이 크고 감정 기복이 심한 유리코에게 계속 무언가 더했다면, 침착한 차경에게는 계속 덜어냈다. 또 감초 역할을 하는 천은호 계장에게는 그의 등장과 함께 극의 분위기가 가벼워질 수 있도록 가르마를 분명하게 나누거나 수염 끄트머리에 입체적으로 힘을 주는 등 캐릭터성을 부각했다.”
영화는 어떤 기점을 넘어서며 남녀 성별을 가르지 않는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인다. 이에 함현주 의상감독은 “활극을 벌이며 모두에게 전사적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남성과 여성 모두 복식이 규정하는 젠더 구분에 구애받지 않길 바랐다”며 의도를 밝혔다. 이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보이기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비상식과 불합리에 항거하는 사람 그 자체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액션의 톤 앤드 매너를 살리다
생사를 건 절박한 혈투가 역동적이고 극적으로 보일 수 있던 건 허명행 무술감독의 액션 디자인 덕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세계> <부산행> 등의 무술감독이자 <범죄도시4>의 감독을 맡게 된 그는 액션의 현실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이해영 감독님이 비주얼에 강하다면 나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성향에 가깝다. <유령>을 작업하며 두 요소의 조화와 톤 앤드 매너를 맞추는 데 중점을 두었다. 어떤 기술들은 만화적 요소처럼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장면 속에서도 현실성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인물의 성향과 성격에 맞춰 각기 다른 무술 포인트를 부여하기도 했다. 먼저 군인 쥰지는 고증에 따라 당시 일본 군인의 공통점이자 특징인 일본 전통 무술 가라테를 익히도록 하면서 절도와 절제를 입혔다. 같은 군인인 카이토는 쥰지와 같은 직업군이기에 기본 설정은 비슷하지만 영화적으로 각기 다른 기술과 타격감을 부여하면서 변별력을 키웠다. 쥰지와 박차경이 맞부딪히는 액션은 그 힘대결이 팽팽하게 느껴진다. 누구 하나 압도적으로 이기거나 지지 않는 균형을 내보인 이유에 대해 허명행 무술감독은 “차경은 여성이 아닌, 시대에 저항하는 한명의 독립군으로서 그 근성과 악바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 화려한 요령을 내세우는 건 아니지만 오기와 힘으로 밀리지 않는 저력을 차경에게 담아냈다. 어떠한 공격에도 사기가 꺾이지 않고, 위기에 몰렸을 때 최대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이 둘의 싸움이 맨몸 싸움으로 그려진 것도 이유가 있다.
“이 장면을 일부러 둔탁하게 표현한 것은 둘의 물리적 힘대결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만일 화려한 기술이나 도구를 사용했다면 액션을 위한 액션이 되어 개연성이 붕 떴을 것 같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무술적 치열함의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했다.”
프로덕션 디자인에 맞춰 무술을 새로 설계하기도 했다. 공간 구석에 내몰린 인물을 탈출시키기 위해 허명행 감독은 불을 질렀다. “이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이다. 그런데 이 인물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상대방의 시야를 가릴 연기와 어둠을 만들기 위해 불을 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 우연히 그 옆에 휘발유가 있는 건 억지스러웠다. 조금 더 현실적인 아비규환을 만들고자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는 물건을 활용해 불을 내도록 했다. 이 시퀀스가 덧붙여지면서 계획에 없던 바(bar)를 만들게 되었다. 이외에도 허명행 무술감독은 미로처럼 보이는 공간에 숨바꼭질을 연상하는 액션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주어진 환경을 십분 활용하고 비틀면서 감정적 서스펜스를 높인다. 그는 무술의 개연성을 자연스레 녹여내기 위해 프로덕션 디자인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창조적인 액션을 구현했다. 이 영화의 ‘유령 찾기'가 스릴 넘치는 과정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건 결국 미술이 자아낸 서사, 의상분장의 구체성, 액션의 현실성이 나란히 균형을 이룬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