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인터뷰] ‘바빌론’ 데이미언 셔젤 감독,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불안과 공포”
2023-01-31
글 : 안현진 (LA 통신원)

- 2009년에 처음으로 <바빌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2018년이 돼서야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뭔가.

= 내 마음에 담아둔 거대한 이야기가 저절로 달여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스토리라인도 많았고 리서치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영화와 영화 사이에 주어지는 잠깐의 시간에도 <바빌론>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천천히 무르익어갔고, 천천히 거대해져갔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내가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드는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 영화의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는 긴 인트로가 인상적이다. 돈 월릭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은 영화가 보여주려는 할리우드의 화려함과 그 이면에 깔린 어둠을 살짝 엿보게 한다.

= 이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규모의 파티로 영화를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통해 올드 할리우드의 명암은 물론이고, 당시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할리우드의 역사를 조사하면서 내가 느꼈던 충격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서치를 통해 발견했던 1920년대 할리우드의 방탕함과 혼란스러움은 직접 보여주는 것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광기와 열기로 가득 찬 시대의 공기는 할리우드가 산업으로 자리 잡기 이전에도 할리우드를 규정하는 무엇이었다. 사막에서 시작해 건물이 가득한 도시로 성장하기까지 할리우드라는 산업과 함께했던 열기와 광기에 대해 영화가 미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대한 파티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바빌론>은 앙상블 무비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모든 캐릭터를 소개하고 싶었고, 이 캐릭터들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를 보여주기에 파티라는 상황이 딱 맞았다. 말하자면 파티는 맛보기다. 이렇게 큰 스케일로 달려갈 거니 벨트를 단단히 매라고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 <바빌론>의 캐릭터들은 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성공을 맛보는 순간에도 웃고 안도하지 못한다.

= 영화는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비극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고 불타는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불타는 열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들이 도망쳐온 곳, 이들이 보상해야 하는 것,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결핍, 자신을 작아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이것들이 캐릭터를 섬세하면서도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로 만든다고 봤다. 할리우드라는 산업이 그렇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성공을 즐겨야 하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상처받기 쉽다. 한번이라도 바람이 잘못된 방향에서 불어온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지니고 산다. 이것이 시대를 막론한 할리우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 <바빌론>을 보면서 영화 팬들은 영화에 대한 영화들을 떠올릴 것 같다. 이를테면 매니가 영화관을 찾은 장면에선 <시네마 천국>이 떠오른다. 의도적인 오마주였나.

= 영화에 대한 영화들에 대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빌론>이 관객에게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바빌론>은 여러 가지 장르, 여러 가지 색깔, 여러 가지 모드를 보여주는 영화다. 코미디에서 비극으로, 비극에서 코미디로, 시대를 다루는 대서사극에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캐릭터 드라마로, 캐릭터 드라마에서 거친 모험극으로 전환된다. 1920년대를 다루기에, 어떤 시점에서는 그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반영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바빌론>을 만들기 위해 되도록 영화라는 틀 안에서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영화라는 미디어가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경험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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