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보통 심장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외면할 수 없는 큰 코, 마음을 느슨하게 만드는 졸린 눈, 시원스러운 이마와 복슬복슬한 귀. 코알라는 마치 그림으로 먼저 그려놓고 만든 동물 같다. 이런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건 반칙 아닌가? 버스터 문이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지휘하고 자동차를 추격하고 물에 빠지고 털이 아무렇게나 뻗친 채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것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코알라가 큰 도시에서 쇼를 제작하고 싶다는데 어떡해, 제작해야지.
다른 일을 하면서 그냥 틀어둘 영화를 찾다가 <씽2게더>를 발견했다. 동물들이 노래하는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이라니, 딱 맞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귀도 즐거울 테니까. 영화는 생각보다 박진감이 넘쳤다. 극중 뮤지컬 공연은 대단히 화려했고, 귀여운 버스터 문과 오만한 대형 제작사 회장 크리스털의 대결도 볼만했다. 다만 로지타가 자꾸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게 신경 쓰였다. 그 밖에는 동물들의 성비도 적절하고 저마다 과제를 해결해가는 과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어린이 영화는 역시 재미있구나.
그래서 세진이가 “그 코알라 좀 이상하지 않아요?”라고 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세진이는 지치지도 않고 내게 ‘마블’ 세계관을 설명해주는 독서 교실 어린이다. 가끔 내가 어떤 캐릭터를 못마땅해하면 “그건 그냥 설정이에요” 하며 늘 창작자의 손을 들어주는 관대한 관객이기도 하다. 자기는 스파이더맨 옷을 차려입고 새 영화를 보러 가면서 이 귀여운 코알라를 비난하다니! “일을 저지르기만 해요. 1편에서는 갑자기 오디션을 열었는데 상금을 영(0) 하나 더 붙여서 광고했거든요? 그건 실수라고 쳐요. 근데 2편에서는 진짜 사기잖아요.”
버스터 문이 크리스털의 지원을 받기 위해 얼결에 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은둔 중인 옛 스타 클레이와 사적인 친분이 있다며 그를 새 공연에 섭외하겠노라 장담한다. 실제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게다가 버스터 문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이미 자신들을 거절한 회사에 몰래 들어가서, 거짓말을 해서 오디션에 합격한다. 결과적으로 멋진 공연을 완성했지만, 분명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설마 코알라가 귀여워서? 그랬다. 뻔한 함정에 그만 빠져버렸다.
버스터 문이 귀여운 코알라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나도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이 영화가 어른용이었다면 어땠을까? 코알라든 다람쥐든 당장 인지적, 정서적 문제가 있는 인물로 보았을 것이다. 주인공의 미덕은 귀여움이 아니라 이야기를 책임지는 데 있다. 자초한 갈등 상황을 남에게 떠맡기면 안된다. 어린이 영화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이야기는 이야기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앞으로 영화 보는 게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