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알고보면 좋은 '바빌론' 속 1920년 할리우드 여덟가지 포인트
2023-02-16
글 : 임수연

제목이 <바빌론>인 이유?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국가 바빌로니아의 수도, 세계 최대의 도시로 명성을 날린 바빌론은 성경에서 악의 소굴로 묘사됐다. 때문에 <바빌론>은 화려한 겉포장과 달리 실상은 지옥도에 가까웠던 1920년대 할리우드를 비유하기 적절한 제목이다. 하지만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트명이 처음 공개됐을 때 많은 영화인들은 어떤 책을 먼저 떠올렸다. 미국의 영화감독 케네스 앵거가 쓴 <할리우드 바빌론>은 19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유명한 할리우드의 추문을 다룬 책이다. 1959년 프랑스어판이 먼저 나온 후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됐지만, 10년 동안 출판 금지를 당해 독자들을 만나지 못한 금서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책의 유일한 의의는 어떠한 구원의 가치도 없는 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혹평했고, 유명 영화인들의 죽음을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사진을 검열 없이 게재하고 명백히 사실과 다른 내용을 포함해 큰 논란이 됐다. 특히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 캐릭터에 영감을 준 클래라 보의 자식들은 이 책을 쓴 케네스 앵거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1984년에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할리우드 스타들의 가십을 다룬 <할리우드 바빌론2>가 출간됐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여배우들

운 좋게 따낸 단역을 영화의 신스틸러로 탈바꿈시키는 넬리 라로이의 재능은 ‘무성영화 스타’가 무엇인지 탁월하게 보여준다. 지나친 사업 욕심으로 딸이 번 돈을 탕진하고, 스스로도 도박에 빠져 유성영화 전환 이후 맞이한 침체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넬리 라로이의 인생은 명백한 레퍼런스를 가리키고 있다. 46편의 무성영화에 출연하며 독보적인 ‘잇 걸’의 타이틀을 얻고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로 떠오른 클래라 보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마고 로비가 가장 많이 참고한 실존 인물이었다. “클래라 보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의 부모는 이미 두명의 아이를 잃었고 클래라도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매일매일을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여한 없이 탕진했던 것 같다.”(마고 로비) 끔찍한 학대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실제 클래라 보는 영화가 묘사한 것처럼 마약중독자는 아니었다. 실수 없이 음향 녹음에 성공하기 위해 모든 배우와 감독, 스탭들이 영겁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던 <바빌론>의 긴 시퀀스는 클래라 보의 첫 토키영화 <와일드 파티> 속 신과 거의 흡사하며, 1932년 개봉작 <콜 허 세비지>와 함께 흥행에는 성공했다. 그 밖에 불우한 성장사를 거친 후 MGM에서 스타가 된 조앤 크로퍼드,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잔느 이글스와 앨머 루벤스 등이 넬리 캐릭터에 영향을 줬다. 실제로 앨머 루벤스의 회고록 <다시 밝은 세상>은 그가 종이 칼로 의사를 찔렀다거나 3천달러짜리 모피 코트를 모르핀과 바꾸었다는 일화를 포함한다.

파티에서 벌어진 일

<바빌론>의 초반부, 난잡한 파티가 밖에서 진행될 때 힘 있는 남성 제작자는 방 안에서 은밀히 어린 여성과 변태적인 성교를 나눈다. 그리고 약물중독으로 기절한 소녀를 몰래 밖으로 빼내기 위해 코끼리를 이용해 쇼를 벌인다. 실제 할리우드도 이처럼 난잡했을까? 미국에서는 1914년 해리슨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온갖 마약이 자유롭게 유통됐고, 1920년대는 아직 암암리에 마약이 유통되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였다. 또한 영화가 묘사한 것과 똑같은 사건은 없었지만, 무성영화 시대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은 한 스캔들은 실제 사망한 피해자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1921년 유명 코미디 배우 로스코 아버클이 연 파티에서 배우 버지니아 랩이 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아버클은 피해자에 대한 강간 및 과실치사 혐의로 피소된다. 세번의 재판 끝에 무죄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그는 할리우드에서 거의 활동하지 못했고, 1930년대 윌리엄 굿리치라는 가명으로 코미디영화를 연출했다.

존 길버트의 흥망성쇠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존 콘래드는 숙취에 찌든 상태로 중요한 촬영에 임하는 등 매사에 불성실하지만 스크린에서 주는 압도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최고의 무비 스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빅 퍼레이드>, 근사한 로맨스 연기를 보여준 <위대한 연인> 등을 통해 무성영화 시대 가장 성공한 배우 중 하나로 자리 잡았던 존 길버트의 인생도 유사하다. 특유의 가볍고 높은 목소리 때문에 ‘토키’의 도입 이후 새로운 유형의 연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MGM 스튜디오 중역들의 미움을 받아 실제 커리어를 방해받았다는 비화가 존재하며, 12년 사이에 네번 결혼했고 그사이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와의 염문설도 있었다. 캐서린 워터스턴이 연기한, 존 콘래드와 결국 이혼하는 연극배우는 실제 존 길버트와 결혼했던 브로드웨이 스타 이나 클레어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극중 묘사되는 필모그래피의 유사성도 발견된다. 존 길버트가 출연한 <할리우드 리뷰 오브 1929> 역시 <바빌론> 속 잭 콘래드가 촬영한 뮤지컬영화에서처럼 <Singing in the Rain>이 등장하고, 관객이 비웃었던 영화의 레퍼런스는 1929년 잭 콘래드의 첫 유성영화 데뷔작 <그의 영광스러운 밤>이다.

매니 토레스와 <헤일, 시저!>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영화인이 되고 싶어 하는 매니 토레스는 쿠바 출신 제작자로서 멕시코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네 카도나, <플라스틱 시대>에서 클래라 보와 공연하고 한때 사랑에 빠졌던 멕시코 출신 배우 길버트 롤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혹은 코언 형제의 <헤일, 시저!>에서 스캔들 처리부터 가십 기사 대처까지 온갖 잡일을 도맡으며 스튜디오의 대표가 된 에디 매닉스(조시 브롤린) 캐릭터를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흑인 음악가들에게 찾아온 기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면서, 할리우드는 영화음악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출중한 트럼펫 실력으로 영화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시드니 파머 캐릭터에 영감을 준 인물로 듀크 엘링턴, 루이 암스트롱, 에델 워터스, 베시 스미스 등 20~30년대 뮤지컬영화에서 흑인 배우들에게 잠시 기회의 문이 열렸던 시기에 활약한 배우들을 언급했다. 당시 커티스 모스비, 레 하이트, 소니 클레이 등 LA 출신 뮤지션들 역시 밴드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종의 벽을 넘어선 사건은 아니었으며, 영화에서 시드니 파머가 얼굴을 더 어둡게 보이게 하는 분장을 요구받는 무례한 일을 겪는 등 당시 흑인 뮤지션들은 여러 차별을 견뎌내야만 했다.

넬리 라로이와 클래라 보가 ′잇 걸’이 된 이유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십 칼럼니스트 엘리노어 세인트 존(진 스마트)을 연기한 진 스마트는 “사람들은 영화가 과장됐다고 생각하겠지만, 영화에 담긴 20년대가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말한다. “‘광란의 20년대’라고 불린 이유가 있다. 끔찍했던 세계대전과 팬데믹을 뒤로하고 일어선 시대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심했고 그저 다 내려놓고 자유롭길 원했다.” 넬리 라로이처럼 라이징 스타를 발굴해 띄워주거나 수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배우를 끌어내리는 일에 앞장섰던 엘리노어 세인트 존에 영감을 준 캐릭터는 작가 엘리너 글린, 아델라 로저스 세인트 존스, 로엘라 파슨스, <이브의 모든 것>의 애디스 드윗이 있다. 엘리너 글린은 실제 클래라 보의 주연작 <잇>(IT)의 원작 소설을 썼고 ‘IT’은 활기 넘치고 당돌한 섹스 심벌로서의 스타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 됐다. 로엘라 파슨스는 당시 할리우드 가십에 통달한 칼럼니스트로서, <사랑은 비를 타고>의 도라 베일리 역시 그를 모델로 한 캐릭터다.

미국 화폐에 등장한 최초의 동양인

수많은 페르소나를 거느리며 화려한 가수로 성공했지만 낮에는 무성영화 타이틀 카드를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레이디 페이 주(리 준 리)의 레퍼런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아시아계 미국인인 애나 메이 웡, 한명뿐이기 때문이다. <바빌론>에서 레이디 페이 주가 보여주는 남성 슈트와 동성과의 키스는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모로코>를 연상시키고, 실제 애나 메이 웡은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상하이 익스프레스>에서 함께 연기하기도 했다. 극중 레이디 페이 주가 넬리 라로이에게 보이는 호감은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1920년대의 할리우드는 난잡한 파티를 즐기면서 동성애는 금기시했던 공간이었고, 넬리 라로이의 능력을 발견한 여성감독 루스 애들러(올리비아 해밀턴)의 실제 인물 도로시 아즈너(미국감독조합에 가입한 최초의 여성이자 유성영화를 감독한 최초의 여성감독이다. 붐 마이크를 처음 고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편집자) 역시 동성애자였다. 지난해 애나 메이 웡의 얼굴이 각인된 25센트 주화가 나오면서 그는 미국 화폐에 등장한 최초의 동양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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