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보고]
[인터뷰] ‘샤퍼’ 줄리앤 무어, “연기는 심도 깊은 역할놀이다”
2023-02-21
글 : 안현진 (LA 통신원)

- 어떻게 이 작품과 만나게 됐는지 궁금하다.

= 나는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매니지먼트 회사가 <샤퍼>의 각본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받자마자 단숨에 읽을 만큼 빠져들었다. 흔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할리우드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정말 많은 각본을 읽게 되는데, 몇 페이지만 읽어도 다음이 훤히 보이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샤퍼>는 처음부터 끝까지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 매들린(줄리앤 무어)은 맥스(세바스티안 스탄)와 더불어 전사가 없는 캐릭터다. 배우로서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전사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 맡은 배역이 어떻게 현재 상태에 이르렀는지 배우라고 해도 매번 알기는 어렵다. 벤자민 카론 감독과 함께 매들린과 맥스의 행동의 원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매들린과 맥스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은 복잡하고 어렵다. 차라리 다른 직업을 갖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들린이 스스로의 행동에서 일종의 기쁨과 만족을 얻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 현실에서 사기당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데 영화로는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 (웃음) 이런 유형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 신중하게 답하고 싶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에 관심이 많다. 그게 관객이 영화를 보는 이유라 생각한다. 영화는 우리의 행동을 반영하잖나. 이건 내가 연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한데, 연기는 심도 깊은 역할놀이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배우는 역할놀이의 과정을 거쳐 연기를 선보이고 관객은 그로부터 재미를 느낀다. 행동과 경험에 대한 관심이 스크린 안으로 이어지는 거다. 책을 읽고 TV를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공간적 배경인 뉴욕도 영화와 잘 어울린다. 뉴욕이 아니라 LA였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됐을 것 같다.

= 그랬다니 기쁘다. 개인적으로 1970년대 영화들이 가진 분위기를 좋아한다. <샤퍼>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화려한 느낌은 보통 1970년대 영화에 잘 드러난다. 그 시대 작품들은 아름답고 황홀한 영상미 속에 휴머니즘을 잘 녹여낸다. 뉴욕이란 배경이 그런 점을 부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뉴욕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지닌 도시다. 그 가능성 덕에 도시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한다. <샤퍼> 속 인물들이 도시의 일부가 돼서 도시의 복잡성과 인물들의 세밀함이 하나로 연결된다.

- 매들린은 패셔너블한 인물이다. 평범하고 튀지 않는 다른 캐릭터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 매들린을 표현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의상은 사람들이 캐릭터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매들린의 착장을 보자마자 관객이 그의 경제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매들린을 패션을 통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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