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어요.” <예스터데이> 시사회가 끝나고 몇 시간 뒤 만난 김선아에게 시사에 대한 소감을 물었을 때 돌아온 말은 좋았다는 뜻인지, 안 좋았다는 뜻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답. 재차 명확한 답을 요구(?)하자 “들어갈 땐 떨렸고, 나올 땐 편했어요”. 영화가 만족스러웠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으나 시험장을 나온 수험생 같은 시원섭섭함을 깊은 한숨처럼 토로한다. 그는 영화 시사회장에서 김승우, 김윤진 등 선배 배우들과 나란히 서서 무대인사를 하다 어쩔 줄 몰라하며 뒤돌아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 무대인사 때 김민정이 울었단 말 듣고 뭘 울기까지, 했는데 그 심정 공감이 가요.” 청심환 먹고 섰던 뮤지컬 무대보다 더 떨렸다는 시험대를 그렇게 통과했다. 백지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빈 채로.
“180도 확 바뀌었지, 뭐!” 김윤진이 <예스터데이>에서의 김선아에 대해 했다는 평은 일리가 있다. 김승우를 보좌하는 특수수사대 요원 매이가 된 김선아는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액션은 민첩하고 총격은 과감하다. 촬영 중 파편이 튀어 왼쪽 뺨의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턱뼈에 금이 가는 부상도 입었지만, 몸생각은 나중에 하자 하며 몸을 날린 덕분에 “걸을 때면 다리 관절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고 능청을 떤다. 지난해 2월부터 머리도 자르고, MBC 드라마 <황금시대> 출연제의도 거절하려 했을 정도로 <예스터데이> 크랭크인만 기다렸다. 정작 크랭크인한 건 지난해 6월. 그 사이에 출연했던 몇몇 CF에서는 머리 만들어 붙인다, 가발을 쓴다, 법석을 피웠다. 촬영 시작한 것도 아닌데 머리는 왜 미리 잘랐냐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단련된 전사의 몸을 만들기 위해 혼자 헬스장 가서 몸만들고 발차기 연습도 한 결과가 스크린에 고스란히 배어난다.
이야기할 때 풍부한 손놀림으로 추임새를 넣는 김선아의 행동은 일본과 미국에서 자란 덕분이다. 부모님을 따라가 일본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대학 1년을 다니다 자퇴서를 던지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한다면 한다”는 성격이 한몫했다. “그냥, 한국어와 일어는 잘하니까 영어까지 잘해두면 굶지는 않겠군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둘러치지만, 사실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돌진한 ‘호기심 소녀’의 예정된 도발이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 피아노로 전공을 바꿔 공부하던 김선아는 방학을 맞아 한국에 놀러왔다가 덜컥 CF라는 걸 찍게 됐다.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학교는 지금까지 휴학한 상태다. 힘들게 따냈던 빈의 음악학교 교환학생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몸담은 연기생활도 벌써 5년째. 그러나 영화는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처음에 출연한 CF 이미지 덕분에 영화제의가 꽤 들어왔고 감독들도 많이 만났지만 입을 연 순간 “한국말이 이상하다, 책 좀 더 읽고 와라” 딱지를 맞았다. 몇편의 시트콤과 방송출연으로 몇년이 지나갔고, 이렇게 방송활동만 하다 영화는 영영 못할까봐 조바심이 났다. 그럴 때 만난 <예스터데이>는 더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작품. 화장품 CF에서 차갑고 도발적인 이미지로 얼굴을 알린 뒤, 피자 CF에서 코믹하게 어필했지만 크게 히트한 드라마나 배역이 없었던 그는 <예스터데이>에서 여전사 매이로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냈다.
“언제든 다시 뭉칠 수 있었음 해요.” 어느 배우가 그렇지 않을까마는 김선아는 주연을 맡아 촬영 중인 두번째 영화 <몽정기> 현장에서도 <예스터데이> 현장과 감독의 자상한 모습이 불쑥불쑥 떠오른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정윤수 감독에 대한 신뢰가 단단하다. 그에게 <예스터데이>는 잊을 수 없는 ‘지난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