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의 주요 배역 오디션이 열리던 LA 파라마운드 사무실. 한 애송이 배우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만났던 모든 캐스팅 디렉터들이 입모아 지적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넌 너무 도시적인데다 외국인처럼 생겼어.” 그런데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인이라니,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그 동안 밤잠을 못 이루고 준비한 실력을 발휘하려는 순간, 파라마운트사를 에워싸고 LA 노동자들이 피케팅 시위를 벌이며 소란을 피워대는 게 아닌가! “마치 야구장에 놀러온 느낌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속에서 묘한 유머를 발견했다.” 결국 이 청년은 한껏 심각해야 하는 오디션장에서 허허실실 맥이 쑥 빠져버렸고, 물론 <엘리자베스>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나 2년 뒤, 그 청년은 LA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우리는 빵뿐 아니라 장미도 원한다’고 외치는 조직원이 되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어쩌면 그날의 사건은 훗날 <빵과 장미>와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인연을 귀띔하는 기묘한 계시였는지도 모르겠다.
마른 몸, 긴 얼굴, 귀를 향해 급속도로 하강하듯 처진 눈썹, 그리고 매부리코. 어디 하나 딱히 잘생겼다고 볼 수 없는 그에게 <빵과 장미>의 마야가 첫눈에 호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신념을 향한 유연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대본연구의 소산물이 아니었다.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빵과 장미>를 찍기 위해 직접 노동조합에 위장가입했다. 물론 한 고급호텔 시위현장에서 그를 알아보고 누군가 사인을 요청하는 긴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는 “직접 뛰어드는 경험이 없이는 도저히 이 영화를 찍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스페인어 공부와 까다로운 사전조사 뒤에 이루어진 비밀활동은 조직가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요구되는지, 그들이 노조를 조직화하는 데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 등 굉장히 구체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그에게 주었다.
펑크와 디스코가 물결을 이루던 1976년의 뉴욕, <썸머 오브 샘>의 무대가 되었던 그 시절, 그곳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태어났다. 14살, 첫 영화데뷔작인 <리틀 킹>에서의 호연은 이후 <불릿> <솔로> <외야의 천사들>에서 조금씩 비중있는 역할로 성장해나가는 밑바탕이 되었고 급기야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테렌스 멜릭의 <씬 레드 라인> 부대에 편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완성되자 그는 많은 분량이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가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테렌스 맬릭은 내가 ‘말없이’ 공포를 표현하는 능력을 특히나 좋아했던 것 같다. 대사를 모두 들어낼 만큼. (웃음) 그는 분명 내 대사를 잘라내며 이렇게 외쳤겠지. ‘그래! 나는 이제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수 있어!’”
하지만 <씬 레드 라인>의 출연 이후 그를 원하는 영화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옥시즌>에서는 여자를 납치하고 산 채로 묻는 “어떤 두려움도 없는 나쁜 놈”이 되었고 <옥시즌> 촬영 내내 끼고 있던 치열고정기를 빼버리고 참가한 <썸머 오브 샘>의 리허설에서는 자유분방한 ‘삐쭉가시머리’ 펑크로커 역을 거머쥘 수 있었다. “<썸머 오브 샘>의 촬영이 끝난 날 새벽 4시에 나는 옷가지와 물건들을 챙겨서 발티모어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부터 바로 <리버티 하이츠> 촬영에 들어갔다” 올해 나이 스물일곱, 비평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이 ‘노력파 행운아’에겐 그 이후도 쉴틈없이 종착역이 다른 기차가 속속들이 도착했고 그는 휴게소에서 노닥거리지 않은 채 빠르게 몸을 옮겨 실었다.
대량학살된 시쳇더미 외에는 살아 있는 것 하나 없는 황량한 거리를 울부짖지도 못한 채 패닉상태로 통과하는 피아니스트.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나치의 바르샤바 침공에서 살아남는 유대인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로 출연했다. “로만 폴란스키는 진정한 대가이고 <피아니스트>는 경의로운 영화다. 하지만 나에겐 매우 가혹한 경험이었다.” 특히 그 역사가 자신의 조국과 가족과 그의 삶에 가해진 고통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또한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는 수많은 고립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를 끝낸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더이상 동료들의 죽음을 보며 공포에 떨던 <씬 레드 라인>의 유약한 병사가 아니다. 노동운동현장부터 2차대전까지, 크고 작은 전쟁터를 통과한 그에겐 그 어떤 바리케이드가 쳐진다 해도 쉼없이 전진할 수 있는 단단한 삶의 무기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