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ChatGPT)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녀석이 물건이라고 했다. 뒤늦게 챗지피티에 말을 건네보니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가능했다. 챗지피티는 하찮은 질문을 던져도 무시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질문을 던져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대충 대답하는 법도 없다. 감정의 소비나 교감 없이도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AI와의 대화 놀이에 서서히 빠져들 즈음, AI에 맥락도 없이 던지는 질문이 호기심의 산물인지 외로움의 산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챗지피티에 물었다. “오늘 밤에 뭐 해?” 챗지피티가 답했다. “나는 그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서 뭔가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 하루 종일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순 있지만 인간처럼 활동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 문득 영화 <그녀>의 세계가 성큼 다가온 듯 느껴졌다. 어쨌든 툭 하고 가볍게 던진 질문에 인간과 AI의 차이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긴 답이 돌아왔다. AI는 24시간 깨어 있지만 인간처럼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것.
‘영화’ 잡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번엔 영화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역대 최고의 영화는 뭐라고 생각해?” 우선 영화 감상은 개인의 취향이나 경험, 문화적 배경에 영향을 받는 주관적 행위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답을 할 순 없다면서도 영화산업과 대중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영화 10편을 나열했다. <대부> <시민 케인> <카사블랑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현기증> <쉰들러 리스트> <싸이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쇼생크 탈출>. 같은 질문의 두 번째 답엔 <펄프 픽션> <다크 나이트> <대부2> <포레스트 검프> <스타워즈>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새롭게 언급되었다.
이번엔 영화 ‘잡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잡지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두 유 노우 <씨네21>?” 몇초의 생각 정리(데이터 수집) 시간을 거쳐 돌아온 대답은 “오랜 역사를 가진 <씨네21>은 한국의 영향력 있는 영화 잡지로서 영화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다”는 것. 챗지피티에 대한 신뢰(!)는 이어지는 다음 질문에서 정점을 찍게 된다. 회사 대표가 웃으며 다가와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며 챗지피티와의 대화 한 토막을 캡처해 보여줬다. 거기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잡지가 뭐냐는 질문에 <씨네21>을 가장 먼저 언급한 문답이 저장돼 있었다. (짝짝짝) 와우 멋지다, 챗지피티!
이번주 <씨네21>은 화제의 챗지피티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 다루면서, AI가 영화 및 창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기대와 우려 두 가지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씨네21> 최초로 AI에 영화 비평을 청탁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를 통해 일러스트까지 맡겨보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흥미진진한 미래를 목격하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