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92년 부산이다. 자칭 ‘해운대의 아들’인 전해웅(조진웅)은 곧 있을 총선을 앞두고 단꿈에 젖어 있다. 지역에서 20년을 뚝심으로 버틴 끝에,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구에서의 공천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해웅은 공식 발표 하루 전날, 후보가 교체되었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듣게 된다. 배후에서 모든 것을 설계하고 명령을 내리는 순태(이성민)의 큰 그림이 바뀐 것이다. 억울함과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던 해웅은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다. 해웅이 믿고 있는 것은 자신이 닦아놓은 지역 민심 기반과 해운대구의 재개발 계획이 담겨 있는 대외비 문서다. 돈을 따르는 조폭 필도(김무열)가 냄새를 맡고 해웅을 지원하고, 해웅은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점한다. 그렇게 해웅이 또 한번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순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외비>는 2019년 <악인전>으로 칸영화제를 찾았던 이원태 감독의 또 한편의 범죄 드라마 영화다. 이번 작품 역시 3명의 ‘악인’이 힘을 겨룬다. 살인범, 조폭, 경찰간 이이제이를 그렸던 <악인전>과 달리 <대외비>에선 정치인과 어둠의 권력 실세, 그리고 조폭이 계속해서 자리를 바꿔가며 서로의 등을 노린다.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주저하지 않고 넘나드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다. 물론 세 인물이 합종연횡하는 모습에서 얼핏 한국의 현실 정치가 느껴지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또는 이 영화를 지금의 해운대 신도시가, 아니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과정처럼 볼 수 있는 여지도 분명 존재하지만, 영화는 그것보단 세 악인의 전투를 묘사하는 데 더 집중한다. 문제는 그 경로에서 이미 한국영화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장면과 대사들이 예상된 타이밍에 등장한다는 것인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랜 기간 개봉이 늦춰진 점을 감안해도 다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사이 영화의 주조연 배우들이 크고 작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주가를 올렸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가장 주목받는 배우는 단연 최근 화제작 <재벌집 막내아들>에 출연했던 이성민 배우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베일에 싸인 권력 실세 순태 역을 맡아 다시 한번 특유의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또한 과거 여러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던 조진웅 배우와 일대일로 맞붙는 장면만큼은 확실히 몰입감이 뛰어나다. 언급하고 싶은 또 한명의 배우는 영화 <미성년>을 통해 얼굴을 알린 박세진 배우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확실한 존재감을 통해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거 보면 나랑 같은 배 타는 겁니다.”
영화에서 함부로 열어봐서는 안될 ‘대외비’에 손댄 인물은 모두 배를 탄다. ‘같은 배 탄다’라는 평범한 표현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대외비>에선 조금 더 섬뜩하게 들린다.
CHECK POINT
<더 킹> (감독 한재림, 2016)
권력을 쥐기 위해 영혼을 파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정치인과 조폭들이 선거 과정에서 꾀를 부리고, 끝까지 승패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들이 나온다. 깨알 같은 ‘역사 강의’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