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비평] ‘TAR 타르’, 불편해야 했던 질문들
2023-03-15
글 :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예술가와 예술을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는가? 세계적인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에게 물어보자.

<뉴요커>의 애덤 고프닉과 함께하는 대담에서 리디아는 두 사상을 소개한다. 첫째는 음악을 연구하다 만난 시피보 코나보 부족의 가르침이다. 그들은 노래를 만든 영혼과 같은 편에 있는 사람만이 노래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는 스승 번스타인이 가르친 유대교의 개념 ‘테슈바’와 ‘카바나’다. 테슈바는 회개, 귀환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카바나는 방향성, 집중, 의도다. 기도하는 이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신성한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깨끗한 의식을 확립하는 과정이다. 리디아는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창작가의 의도와 삶, 심지어 영혼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5번 교향곡 4악장

<TAR 타르>의 중심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있다. 클래식 세계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 리디아의 마지막 숙원은 말러가 생전에 남긴 9편의 교향곡을 자신의 지휘 아래 도이체 그라모폰과 함께 녹음해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세계를 순회하며 말러의 음악을 담아온 리디아는 마침내 영광스러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초 여성 지휘자로 마지막 단 한편의 교향곡을 지휘할 기회를 앞두고 있다.

말러는 5번 교향곡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며 엄숙한 인간의 모든 감정으로 가득 찼으나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그의 뜻대로 5번 교향곡은 과거 그의 작품과 달리 성악도, 표제도 없는 순수한 관현악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딱 한 악장 예외가 있었다. 말러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4악장 ‘아다지에토’다.

‘아다지에토’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뮤즈 알마 쉰들러에게 말러가 바치는 연애편지다. 19살 연하의 알마에게 첫눈에 반한 말러가 열렬한 구애 과정에서 이 악장의 악보를 편지로 보냈고, 이에 알마가 감동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현악기와 하프만 사용된 이 악장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고독하다. 그 미스터리한 매력으로 루키노 비스콘티의 1971년작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끝없이 흐르던 곡이며, 소문난 ‘말러리안’ 박찬욱 감독이 숱한 대체재를 고민하였으나 결국 <헤어질 결심>에 수록한 선율이다.

리디아는 말러가 되어봄으로써 말러를 이해하려 한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말러의 5번 교향곡을 지휘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동일한 재질의 의상을 맞추고, 동일한 구도로 표지 사진을 촬영한다. 그런데 이미 리디아는 말러가 되어본 인물이다. 그토록 사랑하여 결혼한 알마에게 말러는 모든 대외 활동을 금하며 내조를 강요했다. 리디아는 밀접한 동거인 샤론(니나 호스), 비서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는 물론 주위 모든 인물을 계산적으로 대하며 숨 막히는 권력 구도를 즐기는 인물이다. 더 최악은 자신이 후원하는 젊은 지휘자들을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리디아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는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줄리아드 스쿨 특강에서 리디아는 유색인종이자 팬젠더라는 이유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학생 맥스에게 조롱을 퍼붓는다. 그는 작품과 작곡가의 삶을 동일시해서는 창작의 폭을 넓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다. 강철의 페르소나로 무장한 리디아 타르가 실은 기준이 없고 텅 비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케스트라에서 리디아는 열정 넘치고 재능 있는 지휘자의 면모를 십분 발휘한다. 그러나 그는 홀로 남겨질 때 연약하다. 그가 저지른 과오 때문이다. 리디아는 과거로부터 쫓기고 있다. 일상을 자연스럽게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불길한 소음과 강박, 그리고 환상이 성공한 지휘자의 삶을 갉아먹는다. 의사의 감각이상성 등통증(Notalgia) 진단을 노스탤지어(Nostalgia)라 잘못 알아듣고 흠칫할 정도다.

그런데도 리디아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가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게 만드는 인물은 러시아에서 온 젊은 첼리스트 올가(소피 카우어)다. 리디아는 올가가 과거 연주한 엘가의 첼로 협주곡 영상에 매료되어 떨떠름한 단원들의 반대에도 올가에게 첼로 솔로를 할당한다. 야성적이고 거칠며 화려한 엘가의 곡만큼 올가는 매력적이다. 리디아는 재단 후배의 극단적인 선택 소식이 그를 조여오는 상황에서도 올가에 대한 관심을 끊지 못한다. 리디아는 자제력을 잃는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도이체 그라모폰의 앨범 커버 속 마에스트로는 없다. 이후 영화는 리디아 타르가 대가에게 요구되는 자기 관리에 소홀했음을 잔인하게 폭로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쫓겨난 후, 쓸쓸히 고향 집으로 돌아온 리디아는 유년기 때 녹화해두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디오를 돌려본다. 리디아가 보는 영상은 번스타인이 1958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진행했던 미국 <CBS> 방영 프로그램 <영 피플스 콘서트> 중 한 장면이다. 여기서 번스타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음악은 항상 어딘가로 이동하고 변화하며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흘러가는 움직임이며, 그 움직임은 백만 마디 말보다 우리가 느끼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리디아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먼 길을 떠난다. 엔딩 신에서 그는 수많은 코스플레이어 관객을 앞에 두고 인기 게임 <몬스터 헌터>의 사운드트랙 녹음을 지휘하고 있다.

세상은 예술가를 원한다

<TAR 타르>는 끝까지 모호하고 짓궂은 영화다.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여러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리디아는 ‘몰락’한 것일까?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 업계나 용어 대신 음악이 전달하는 감정에 집중하라고 가르쳤다. 클래식은 우월하고 게임 음악은 저질일까? 서구 사회에서 ‘취소’된 리디아가 아시아에서 게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는 결말을 ‘처벌’이라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삶과 예술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할까? 큰 잘못을 저지른 예술가에게 내려져야 할 형벌은 무엇일까?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극 초반 리디아의 대답을 되돌아볼 수는 있다. ‘타르’(TAR)가 아니라 ‘시궁쥐’(RAT)에 가까운 영혼을 지닌 리디아는 결코 거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어떤 형태로든 예술가를 원하고, 리디아가 그 부름에 응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구스타프 말러의 5번 교향곡은 지휘하지 못하더라도 5번 소녀를 추천하는 사창가 직원이나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5번 함대의 승조원들은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엄숙한 내레이터의 마지막 경고가 의미심장하다. “두려우면 내려라. 말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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