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구경이’ 성초이 작가가 요즘 꽂혀있다는 작품들
2023-03-12
글 : 박다해 (<한겨레21>기자)
사진 : 박승화 (<한겨레21> 선임기자)
박승화 <한겨레21> 선임기자 - 성초이 작가팀이 마주앉아 글을 쓰고 있다.

차기작은 초국적 첩보액션물

이들에게 이야기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자 “전부”(B)다. B는 어릴 때부터 뭐든 이야기로 풀어내는 걸 좋아했다. “학교에서 수행평가를 할 때 논설문 같은 것 쓰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때도 이야기를 썼어요.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요.”

A는 고등학생 때 영화의 매력을 알았다. “한 장면에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음악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에 (소설보다) 더 매력을 느끼면서 이런 장면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에 없는 걸 보는 일, 일어날 법하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을 볼 수 있잖아요. 이야기는 결국 상상을 통해 발전시키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일이고, 그런 점이 재밌던 것 같아요.”

틈틈이 메모하는 것도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단 이미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대사를 메모해두진 않는다. “이미 한번 쓰인 거니까요. 대신 실생활에서 들리는 말, 지인들과 대화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듣는 이야기 등을 메모해두곤 해요. 이런 메모에서 많이 가져와 쓰는 것 같아요.”

어떤 메모가 있는지 슬쩍 귀띔해달라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각본도 쓰고 감독도 하시는 분이 말씀하신 건데 ‘연출은 개도 해’ 이런 말이 있네요.”(A) “‘이대로 잃어버리기는 싫습니다’란 문장이 적혀 있어요. 고양이를 찾는 전단에서 본 문구예요.”(B)

성초이는 2023년 선보일 <링마벨> 작업에 한창이다. <링마벨>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초국적 스파이들이 나오는 ‘첩보물’로 ‘시즌제 스파이 드라마’다. “전작보다 훨씬 힘들다”며 머리를 싸매는 중이다.“이야기를 쓰는 일에 권태가 온 것 같아요.” A가 걱정하자 옆에서 B가 천연덕스럽게 되받아친다. “잘 풀리고 있다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봐!” 이내 웃음이 터졌다. 성초이가 보여줄 호흡에 또 한번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사진제공 JTBC

‘성초이’가 요즘 꽂힌 작품

성초이가 영감을 얻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책을 많이 읽었다. 최근에 나온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원청>), (스파이 소설의 대가로 꼽히는) 존 르 카레의 소설들. 지금은 안드레아 롱 추가 지은 <피메일스>를 읽고 있다.”(A) “<샌드맨>을 재밌게 보고 있다. 넷플릭스에 나온 드라마도 있는데 원작인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너무 재밌다’고 감탄한다.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이런 사람이 예술을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한다.”(B)

둘 다 특별히 작법서를 읽는 건 아니다. B는 “유일하게 본 작법서가 <세이브 더 캣>인데 얇고 영화 시나리오용이라 드라마와는 또 다르다”고 했다. 대신 다른 드라마 대본을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A는 미국 드라마 <베터 콜 사울>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

최근에 둘 다 재밌게 본 작품은 미국 드라마 <더 보이즈>(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넷플릭스)다. “<더 글로리>를 보면서 무얼 덜어내야 할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더 대사를 주거나 설명하고 싶은 캐릭터에 대해서도 빼야 할 부분을 빼고 깔끔하게 넘어가더라.”(B) “대사를 진짜 잘 쓴다고 생각했다. 나는 실제로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면 대사로 못 쓰는 편인데 <더 글로리>의 대사는 실제로는 쓰지 않을 법한 말이라도, 강렬하게, 캐릭터에 어울리게 쓰여 있다. 그래서 그 대사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고, 많은 사람이 되뇌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을 정말 배우고 싶다.”(A)

에필로그

드라마 마니아라고 선뜻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장르물, 특히 무언가를 ‘수사하고 추적하고 법정에서 뭔가를 따지는’ 스릴러 요소가 담긴 작품을 유달리 좋아한다. 2021년 방영된 <구경이>는 산뜻한 충격이었다. 대개의 스릴러 장르에서 여성은 범죄 피해자로 재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면서도 늘 ‘이런 걸 즐기며 봐도 되나’ 싶어 마음 한쪽에 찝찝함이 남아 있곤 했다.) 여성 캐릭터가 수사팀의 일원일 수는 있어도 수사를 전면에서 이끄는 ‘똑똑하고 힘 있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구경이>는 이런 통념을 완전히 비틀어버린다. 범죄 피해자를 대상화하지 않고도 사건 수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구태여 남성 경찰이나 탐정이 아니라도 극을 흥미롭게 주도해갈 수 있다는 것(덕분에 남성주인공이 수사하는 모습에 반해버리는 여성 보조 캐릭터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60대 중년 여성이 애달픈 엄마 역할로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구경이>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성초이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건 이런 ‘새로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성초이는 ‘천재’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감탄하다가도 “어차피 내가 그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쓰는 일은 결국 각자가 알아서 부딪쳐가며 터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성초이만의 색깔을 담아낸, 이들이 계속 부딪쳐가며 쓰고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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