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SF]
[곽재식의 오늘은 SF] 양자 중력 이론으로 보는 별나라 삼총사
2023-03-30
글 : 곽재식 (소설가. 공학박사)
<별나라 삼총사>

알리바이는 추리의 기본이다. 사건 발생 시각에 어떤 사람이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말은 곧 그가 사건 장소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등장한 과학 이론인 양자 이론은 알리바이가 모든 물체에 대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양자 이론은 무엇이든 정밀하게 따져 계산할 때에는 한 물체가 동시에 두 군데 이상의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고 치고 계산하는 방식을 택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생각이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게 말이 되나 싶어 어디인가에 잘못 생각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도 든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양자 이론은 검증을 견뎌냈고 지금은 가장 믿을 만한 과학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자 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두축으로 인정받는 다른 이론으로 상대성이론이 있다. 이해하기 어렵기로는 상대성이론도 양자 이론 못지않다. 상대성이론은 돌을 허공에 던지면 땅에 떨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돌의 속도와 날아간 거리를 정밀하게 계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4차원 시공간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 상황에서 시공간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따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무슨 특별한 마법의 돌을 던지기 때문에 시공간 왜곡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물체의 무게와 움직임을 따질 때에는 항상 4차원과 시공간의 왜곡을 따지지 않으면 오차가 생긴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의 결론이다.

대학 강의에서도 양자 이론과 상대성이론은 어려운 과목으로 자주 거론된다. 과학자들에게 더욱 어려운 것은 양자 이론과 상대성이론, 특히 그중에서도 일반 상대성이론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양자 이론과 상대성이론은 모든 물체에 항상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므로 무슨 물체든 그 물체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움직임을 계산하려면 두 이론을 동시에 활용해야만 한다. 당연히 그런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양자 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을 깔끔하게 하나로 연결해서 활용하는 일에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의 뛰어난 학자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지만 여태껏 그 누구도 훌륭한 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상대성이론이 중력을 계산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에 이렇게 두 이론을 동시에 사용하는 법을 흔히 양자 중력 이론이라고 부르는데 2023년, 지금까지도 완성되어 검증된 양자 중력 이론은 없다.

그런데 1974년 영국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이 문제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그는 블랙홀도 온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따지다가, 블랙홀의 온도를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때 호킹은 블랙홀이라는 대단히 이상한 물체에 대한 계산법을 만들기 위해 양자 이론과 상대성이론을 어느 정도 동시에 고려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많은 학자들을 감동시킬 만한 결과였다. 블랙홀은 실제로 우주에 있는 물체이고, 어느 정도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호킹처럼 블랙홀을 자세히 연구하고 실제 블랙홀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언젠가는 양자 이론과 상대성이론을 동시에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그 어려운 과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곧 온갖 분야의 과학자, 수학자가 블랙홀에 전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블랙홀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과학 이론을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 기술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1970년대 중반이 되자 블랙홀 이야기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호킹의 연구 결과로 발표된 지 불과 3, 4년이 지나자 SF 만화, 소설에서도 대중이 사랑하는 주제가 되기 시작했다. 대단히 심각한 과학 이론이 흥겹게 즐기는 대중문화에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1979년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아예 제목이 <블랙홀>(<스타워즈>의 아류작 취급을 받긴 했다)이라는 영화도 개봉되었다.

한국에서도 <스타워즈>의 아류작이 나왔고, 그 영화에도 스티븐 호킹이 불러일으켰던 과학계의 새 관심, 블랙홀이 소재로 잠시 등장한다. 단, 당시 한국에서는 SF라면 만화나 어린이 영화의 소재로 적합하다는 고정관념이 강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바로 <블랙홀>과 같은 해인 1979년에 나온 영화 <별나라 삼총사>다.

<별나라 삼총사>를 심각하게 블랙홀에 대해 따지는 영화로 받아들일 순 없다. 외계 행성을 찾아간 한국 어린이들이 <스타트렉>의 커크 함장을 흉내내는 내용이 중심이다. 게다가 어린이들이 태권도를 선보이자 거기에 감탄한 외계 행성의 임금님이 한국 어린이를 우주 전함에 태워 적진으로 내보내 싸우게 한다는 내용을 태연히 보여준다. 실감나고 짜릿한 영화라기보다는 어린이들이 요정을 믿으면 피터 팬을 따라 하늘을 날아가 해적과 싸울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에 훨씬 더 가깝다. 어찌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SF 소설 팬들이 그렇게나 증오했던, “SF는 애들이나 좋아하는 유치한 것”이라는 편견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영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런 영화가 한국인들이 어릴 때부터 얼마나 SF를 가깝게 즐겨왔고, 과학과 관련된 소재는 언제든 대중에게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위험하지만 블랙홀을 통과하면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소재로 등장한다. 팅커벨을 따라가는 웬디 일행의 감성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그렇지 내용만 보면 21세기에 나온 천만 영화 <인터스텔라>의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별나라 삼총사>가 어린이 영화를 폄하하던 시대에 힘겹게 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일 만한 사실이다. 실제로 <별나라 삼총사>는 어린이 관객 사이에 꽤 인기를 끌었다.

나는 한국인들이 현실 문제에만 매달리는 민족이기에 기초과학이나 과학의 근본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주장이나 SF는 본래 한국인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이야기였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그런 해석을 무심코 반복하며 퍼뜨려온 당국이나 언론의 분석이야말로 오히려 성의가 없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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