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혼모의 아이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당시 한국 법에 따라 소영(최승윤)은 아들 동현(황이든)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주한다. 한 부모 가정을 향한 냉담한 시선은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로 대치된다. 주변의 무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영은 당당한 태도로 대응한다. 엄마와 달리 동현은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데, 그럼에도 학교에선 한국인이라고 차별받는다. 동현이란 이름과 새로 부여받은 데이비드란 이름 사이에서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은 그의 열망은 강해진다. 엄마와 사별한 아빠에 관해 물어도 소영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모자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한편 공장에서 만난 사이먼(앤서니 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중 소영은 자신의 건강에 이상 신호를 감지한다.
제작 비화를 듣지 않더라도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누군가가 한참 곱씹은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만큼 동현과 소영을 경유해 드러난 감정들은 의도적으로 정제되지 않았고, 솔직하다. 앤서니 심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로 두 번째 장편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쓰고 연출했으며 사이먼 역으로 출연했다. 1990년대 캐나다의 풍경과 이민 1, 2세대가 겪은 인종차별, 문화적 차이가 사실적으로 묘사됐고 16mm필름 특유의 질감이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롱테이크 신과 매끄러운 카메라 트래킹이 특히 인상적인데 인물을 감싸안 듯 돌고 들어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누구의 시선을 담지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한국을 방문한 뒤 완전히 변하는 동현의 모습은 자신의 근원을 확인하고, 부재한 부모의 흔적을 쓸어보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긍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플래시 포워드상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토론토 플랫폼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