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신하은 작가, "절망이 있어도 희망으로 끝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2023-05-16
글 : 남지은 (<한겨레> 기자)
사진 : 김진수 (<한겨레21> 선임기자)
사진제공 tvN

조연의 가치를 아는 특출난 신인

이쯤 되면 <갯마을 차차차>는 로맨틱 코미디를 가장한 ‘자기 계발극’ 인가. 3월3일 서울 상암동에 있는 신인 작가 양성소 오펜(O’PEN)에서 ‘인생 2회차’를 사는 것 같은 신하은 작가를 만났다. “하하하. 전 작가이기 이전에 참으로 사소한 인간이에요. 희로애락이 취미이고 일희일비가 특기죠. 걱정이 많고 자책도 자주 해요. 전 일찌감치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고 세상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글을 쓰는 데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대신 시청자가 느끼는 일상의 피로감을 녹여 주는 작가였으면 했어요. 슬픈 장면이라도 결말은 슬프지 않은, 절망이 있어도 희망으로 끝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 글에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다. 결국, <갯마을 차차차>다. <갯마을 차차차>는 신하은 작가가 처음 혼자서 집필한 미니시리즈다.

신하은 작가는 2017년 오펜 스토리텔링 공모에 당선되고 작가가 됐다. <갯마을 차차차>를 하기 전 <아르곤>과 <왕이 된 남자>에 공동집필 작가로 참여했다. 두 작품 모두 제작자한테서 먼저 제안받았다. 특히 <아르곤>은 오펜 당선 2개월 만에 이윤정 담당 PD가 직접 ‘러브콜’ 을 해 업계에서 그의 이름에 귀 기울이는 이가 늘었다. “그때 정말 놀랐어요. 이윤정 PD님의 <커피프린스 1호점>을 재미있게 봤고, 그분의 팬이기도 해요. 현장에서 PD님을 보자마자 ‘저 팬이에요’라며 방방 뛰었죠.”

정작 자신의 대표작이 된 <갯마을 차차차> 때는 집필 제안을 받고 망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공동작업 두편 하고 혼자 해보려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던 때였어요. 원작 영화 제목이기도 한 ‘홍반장’은 고유명사 같은 캐릭터여서 그 이름에 먹칠할까봐 걱정도 됐어요. 영화에서 홍반장을 연기한 김주혁 배우님의 대표작에 흠집 내면 어쩌나 염려도 됐고. 김주혁 배우님은 제 첫 미니시리즈 <아르곤>의 주인공으로 함께 작업했기에 지금도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어요.”

하지만 창작자들은 ‘열정’이 타오르면 도리가 없다. 그는 결국 집필을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을 다시 보다가 ‘홍반장 캐릭터를 2021년에 데려다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잠깐 생각해봤더니 재미있겠더라고요!” 실제 ‘2021년형 홍반장’의 등장에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김선호라는 스타의 탄생과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미니시리즈가 오랜만에 나왔다. 드라마사로 보면 <서울의 달> 김운경 작가,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에 이어 ‘투박함 속에 따뜻함이 묻어나는 작품’을 잘 쓰는 또 한명의 작가가 탄생했다. “제 드라마에 극성은 없을 거예요. 그저 사람과 사람이 얽혀 빚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과 감정의 진폭이 전부예요. 드라마는 곧 ‘갈등’이 라고 배웠는데, 그래서 <갯마을 차차차>가 잘될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맛을 잘 못 느끼던 시청자도 결국 평범한 이들의 소소한 일상에 빠져들었다. <갯마을 차차차>는 방영 당시 1회 시청률 6.8%(이하 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6회 만에 10%를 넘어섰다. 줄곧 두 자릿수를 지키다가 12.6%로 막을 내렸다. 신하은 작가가 여느 신인 중에서 특출난 점은 조연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다. 그가 ‘K드라마’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데도 작품에 여러 명을 등장시켜 놀 줄 알기 때문이다. <갯마을 차차차>에선 극중 주요 배경인 ‘공진’에 사는 사람만 약 16명이다. 모두 이름이 있고 사연이 있다. <가요톱텐> 2위까지 했으나 매니저한테 사기당해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고도 여전히 꿈을 잃지 않는 오춘재(예명 ‘오윤’ , 조한철), 홍반장을 친손주처럼 보듬고 사람들한테 다 퍼주는 김감리(김영옥) 할머니, 다른 집 아이를 내 자식처럼 아끼는 조남숙(차청화) 등이다.

윤혜진의 부모와 서울에서 촬영하려고 공진에 온 방송사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이 드라마, 매회가 잔칫날이다. “원작 영화에는 조연이 거의 안 나오잖아요. 드라마에는 여백을 사람 들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윤은 영화에서 홍반장이 카페에서 노래할 때마다 ‘사장은 오디션 보려고 서울에 갔다’는 식으로 얘기하 잖아요. 얼굴은 한번도 안 나오고. 그 대사에서 착안해 인물을 만들었어요.”

어디든 작가는 자기 자신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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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혜진과 홍반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마다 사는 이야기로 드라 마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었다”며 “조연들한테 한번씩 핀 조명을 받는 순간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하은 작가는 수많은 인물에게 각자의 서사를 부여하고 이를 16회 안에 적절히 안배했다. 2017년 데뷔해 공동집필 두편에 단막극 한편(<문집>)을 발표한 신인 작가가 해내기 쉽지 않은 작업이다. 조연이 많은 상황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동선을 잘못 계산하면 중간에 서사를 빼는 상황이 올 수 있고 그러다보면 작품이 산만해질 수 있다. 신하은 작가는 시놉시스를 쓰는 과정에서 인물 배분에 특히 신경 쓴다고 했다. “전체 16회를 나눠놓고 그 안에 여러 인물의 어떤 이야기를 등장시킬지 사전에 꼼꼼히 배분해둬요. <갯마을 차차차>에서 등장인물의 사연이 처음 계획한 대로 풀렸어요. 단 한 사람 조남숙은 아이와 관련한 서사가 없었는데 중간 에 넣었어요. 남숙이 얄미운 캐릭터여서 좀더 사랑받게 해주고 싶었 습니다.” 그러면서? “원래는 남숙한테 멀리 떨어져 사는 연하의 해군 남편이 있고, 그래서 마지막에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차청화 배우님 한테 남편 기대하시라고 했는데, 나중에 죄송하다고 했죠. 하하하.”

굳이 분류하자면,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작품을 잘 쓰려면 작법 스타일이 규칙적이어야 하는 걸까. 조연이 주연인 대표적인 작품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도 계획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 다. 오전에 글을 쓰고, 점심을 잘 챙겨 먹고 다시 오후에 글을 쓰고 일정 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닫는다. 밤을 지새우며 불규칙한 생활을 하지 않는다. 신하은 작가도 작업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내놨다.

“계획적으로 대본을 쓰는 스타일에 가까워요. 회차에 신리스트를 짜고 나면 일정을 끊어서 하루에 몇신씩 써요. 예를 들어 열흘 안에 써야 하면 최소 8일 안에 하루 열신씩 쓴다고 일정을 잡아놓고 그대로 작업해요. 안 써지는 날을 대비해 하루 이틀 여분을 두죠. 반드시 최종 날짜를 지켜요. 드라마는 협업이라서 완벽할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뒤늦게 보여주기보다 제가 조금 아쉽더라도 일단 보여주고 피드 백을 받는 게 저한테는 효율적이었습니다.”

신하은 작가는 작업실은 따로 두지 않고 집에서 대본을 쓴다. 그는 “집이 집중이 더 잘되기도 하고, 내 몸을 챙겨서 어디로 데려다 놓는게 시간을 쓰는 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눈을 뜨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책상에 앉는단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기 싫어질까봐 우선 몸부터 책상에 앉혀두고 컴퓨터를 켜고 작업물을 꺼내 읽다보면 정신을 차리게 된다며 웃었다.

장소가 어디든 루틴이 어떻든 간에 작가는 결국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드라마가 아무리 협업이고 소통이 잘되더라도 대본을 완성하는 건 결국 작가다. 모든 스탭과 배우가 현장에 있는 동안 작가는 혼자 작업실을 지킨다. 그런 면에서 집필하는 건 행복과 괴로움을 동시에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를 쓰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어떻게 즐거울 수 있을까. “드라마를 쓰는 것도 저한테는 덕질의 과정이 에요. 제가 쓴 게 영상으로 구현돼 나올 것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과정도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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