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트(캐서린 클린치)는 말수가 적다. 원체 소심하거니와 또래보다 글 읽는 실력이 뒤처지는 탓도 있는 것 같다. 학교에선 별종 취급받고 아버지에겐 ‘겉도는 아이’라고 명명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에의 부적응이 코오트의 잘못은 아니다. 강압적인 아버지는 가정을 홀대하고 자식들에게 모질기만 하다. 가정의 억압이 어린 소녀의 자유와 성장을 억누르는 형국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 코오트는 어머니쪽의 먼 친척인 에이블린(캐리 크로울리), 션(앤드루 베넷) 부부에게 맡겨진다.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가 코오트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겠단 이유다. 그리고 이곳에서 코오트는 예상치 못한 사랑을 만끽한다.
에이블린 부부는 코오트가 평생 겪지 못했던 따스한 말, 정성스러운 목욕, 다정한 잠자리와 새 옷을 아낌없이 안겨준다. 그러나 여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코오트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우리는 할 말이 너무 없을 때 침묵한다. 한편으론 할 말이 너무 많을 때도 침묵한다. 이른바 말문이 막히는 상황, 꺼내고 싶은 마음에 비해 빈약한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다. 코오트는 이러한 말의 속성을 일찍 깨우친 아이다. 부모의 눈치를 보고 주변의 핍박을 받는 아이로서 숙달할 수밖에 없던 처세일 테다. 억울함이나 기쁨, 어느 감정도 입 밖에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원작인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에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코오트는 에이블린과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던 중 속으로 생각한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즉 코오트에게 침묵이란 행복과 절망이라는 상황 모두에 통용된다.
<말없는 소녀>의 영화적 태도도 코오트의 가치관과 같다. 원작에서 쓰인 코오트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서술을 내레이션으로 옮길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처럼 코오트의 대사를 최대한 줄이고 조용한 아이로 구현한다. 대신 코오트를 향한 섈로 포커스의 클로즈업이나 팔로잉숏, 또는 코오트의 시점숏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로써 외부의 반응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코오트의 표정이나 코오트가 바라보는 타인의 뒷모습, 자연의 풍광을 비추는 일에 집중한다. 코오트의 속내를 직접 끄집어내기보단 아이가 바라보는 것, 기억하는 것, 느끼는 것을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소설과는 다른 영화만의 미묘한 감정 전달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말의 횟수가 적은 만큼 코오트가 종종 내뱉는 소수의 발화는 더욱더 묵직해진다. 마음에 꾹 눌러담았던 단어를 조심스레 토해내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 울림은 극대화된다.
션이 코오트에게 건네는 말이다. 말의 무게, 그리고 말보단 마음으로 통하는 인간의 유대를 담담하게 표현하는 순간이다.
CHECK POINT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말없는 소녀>는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번의 여름 동안이지만 코오트와 에이블린, 션 부부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나날을 함께한다. 함께 식사하고 속내를 나누고 사랑을 주고받는다. 이는 곧 핏줄이 부모의 자격을 온당하게 보증하는지, 혹은 시간이 그것을 주조하는지에 대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질문과 맞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