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영화 제작자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뒤라스는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의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여러 장소를 옮겨다니며 성장했고, 나중에 파리에서는 여러 아파트에 세 들어 살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자기의 집(<태평양을 막는 제방>의 영화 판권 계약금으로 마련한 노플르샤토에 있는 집)을 갖게 되었을 때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금은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어쨌든 이 집은 너무도 나의 것이 되어서 내가 있기도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의 소유였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예요.” <뒤라스의 그곳들>은 1976년 TV프로그램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장소들>을 위해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영화감독 미셸 포르트와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름을 알린 소설 <연인>과 각본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장소가 갖는 중요성을 떠올린다면 이 책에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도리는 없으리라.
이 책은 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한 애착을 노래하는 동시에 “집에는 가족에 대한 혐오도, 도피 욕구, 자살의 온갖 심기도 새겨져 있어요”라는 점을 짚어내는가 하면, 숲과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장소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 무척 중요한데, <나탈리 그랑제>를 만들 때 집에서 출발했고, “집 자체가 이미 영화”였다는 것이다. ‘장소들’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영화적 장소, 소설적 장소, 삶의 장소들을 회고를 통해 하나씩 불러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거울 역시 하나의 장소이다. “이미지가 빨려 들어가고 다시 빠져나오는 구멍” 같은 거울은, 이미지를 무한히 멀어지게 하는 장소가 된다. 거울은 거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동시에 말의 현존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장소라는 것. <뒤라스의 그곳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과 영화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한 충실한 주석이다. 그의 말만큼이나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여러 장의 사진들이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는 이해를, 동시에 그 시간과 그 장소에 대한 기묘한 노스탤지어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