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도 정체도 공개되지 않은 채 마르코(강태주)의 삶에 불쑥 끼어든 귀공자는 내내 이름도 밝혀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능청스러운 태도와 비죽거리는 웃음, 포커페이스로 생동감을 자아낸다. 단막극 드라마 <미치겠다, 너땜에!>의 김래완과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차우식을 통해 개성을 선보인 그는 드라마 <스타트업>과 <갯마을 차차차>에서 로맨스 주역으로 입지를 다졌다. 그런 김선호에게 귀공자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경계를 넘나들도록 문을 열어준 인물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머릿속으로 빠르게 그림이 그려졌다. 추격 누아르는 배우라면 늘 꿈꾸는 장르다. 모든 액션을 능가하는 귀공자가 위트를 잃지 않는 모습도 좋았다. 이런 역할이 주어진 게 너무 감사했다.” 귀공자는 진지하기보다 장난스럽고, 묵직하기보다 가볍다. 그의 태도를 체화하기 위해 김선호는 상황마다 귀공자가 현실적으로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신에 담긴 주요 맥락에 집중할수록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어투와 눈빛, 제스처를 취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귀공자다운 것을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박훈정 감독님 말마따나 ‘깔끔한 미친놈’을 만들고 싶었다. (웃음)”
특히 박훈정 감독은 귀공자가 관객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기까지 특정한 뉘앙스나 의미를 내색하지 않길 바랐다. “어떤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선을 멀리 두어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래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왜 거길 보냐더라. 조금이라도 눈빛이 흐려지면 마치 귀공자가 불안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더 깔끔하고 콤팩트하게 시선 처리를 하길 바랐던 것이다. 귀공자는 늘 자신감 넘치고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나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첫 영화와 첫 액션. <귀공자>에는 김선호의 많은 처음이 담겨 있다. 그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오랜 훈련을 받았지만 현장에는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바로 고소공포증이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줄 처음 알았다. “많은 액션이 있었지만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 뛰어내리는 순간 내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진짜 무서운 건 뛰면서도 ‘아, 또 뛰어내려야 하네’라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거였다. (웃음) 그외엔 생각보다 괜찮았다.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며 무술을 변주하는 과정에도 중요한 배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