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투둠’, 팬심을 매개로 한 초국적 페스티벌
2023-06-29
글 : 임수연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극장에서 16번 본 친구가 정대만 생일 광고를 보기 위해 부산에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정대만에게도 생일이 있냐고 물었다가 혼날 뻔했다. 팬심은 이런 것이다. 2D든 3D든 가상의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실존 인물처럼 대하고,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의미 있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것. 6월16일부터 18일까지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재단에서 열린 넷플릭스 글로벌 팬 이벤트 투둠은 콘텐츠에 ‘과몰입’한 사람들을 위한 페스티벌이다.

<오징어 게임> <웬즈데이> 세계관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올해 투둠은 <브리저튼> <오징어 게임> <기묘한 이야기>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등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콘텐츠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한번에 알아볼 수밖에 없는 작품 속 특별한 공간을 그대로 재현했다. <브리저튼>에서 케이트와 앤소니가 하던 공놀이를 체험하다 샬럿이 오렌지를 따던 정원에서 사진을 찍고, <원피스>의 고잉 메리 호 앞에서 루피와 똑같이 분장한 사람과 어울려 놀고,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에서 오티스와 메이브가 키스를 나눴던 주유소를 생생하게 다시 만날 수 있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4에서 엘이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롤러스케이트로 응징했던, 복고풍 스케이트장도 이벤트 한복판에서 관객을 만난다. 가장 긴 줄이 늘어선 곳은 <웬즈데이>의 네버모어 아카데미를 재현한 부스였다. 첼로로 <Paint It Black>을 연주하는 웬즈데이를 따라가면 그가 참석했던 까마귀 무도회, 이니스 싱클레어의 기숙사, 제이비어 소프의 개인 화실 등이 눈앞에 펼쳐진다. 올해 투둠이 마련한 몰입형 전시와 체험 공간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 곳은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한국 콘텐츠를 한데 모은 ‘코리아 타운’이다. 작품 속 ‘오징어 게임’ 도전자들이 입는 트레이닝복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참여자에 한해 빌려주고, 팀을 짜서 줄다리기를 할 수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동그라미 김밥,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면 거의 투둠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연애대전> 코너에는 인생네컷 같은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부스가 마련돼 있다. 기념품 숍에서는 <기묘한 이야기>의 헬파이어 클럽 티셔츠, <웬즈데이> 캐릭터의 특성을 살린 고스룩 등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수 있는 상징이 박혀 있는 다양한 굿즈를 판매한다.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낸 축제의 장

누구보다 빨리 정보를 습득하고 싶어 하는 심리 역시 팬 문화의 주요 특성 중 하나다. 6월17일 오후 5시30분(현지 시각 기준)부터 시작된 투둠 글로벌 쇼는 넷플릭스의 추후 라인업에 대한 영상과 정보를 이 자리에서 ‘최초’ 공개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감독과 배우가 직접 행사장을 찾아 팬들과 눈을 마주치며 최신의 뉴스를 공유한다면 감동은 배가된다. 크리스 헴스워스와 샘 하그레이브 감독은 투둠에서 <익스트랙션> 3편 제작 확정 소식을 알렸고, 객석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내 행사장을 뜨겁게 달군 갤 가돗은 <하트 오브 스톤>의 메인 예고편을 이 자리에서 처음 선보인다고 강조했으며, <레벨 문>의 제작 비하인드 영상 역시 잭 스나이더 감독과 제작자 데버라 스나이더, 소피아 부텔라 등 주연배우들의 소개와 함께 최초 공개됐다. 동명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원피스> 실사판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팬들과 가까운 자리에서 먼저 호흡한 후 첫 트레일러를 공개하는 전략을 썼다. 그 밖에 작품 관계자가 직접 브라질을 찾지는 않았지만 장내를 달군 깜짝 뉴스가 있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새롭게 합류한 임시완, 강하늘, 박성훈, 양동근 그리고 공유의 얼굴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장내는 뜨거운 환호로 가득 찼다.

이같은 행사가 북미가 아닌 브라질에서 열린다는 것은 중남미가 강한 충성도의 팬덤, 가능성 높은 소비 시장을 지닌 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라틴아메리카는 인종, 계급을 초월한 공통의 관심사로 기능하는 축구 팬 문화가 아예 지역적 특색으로 뿌리내린 곳이다. K팝이나 K드라마에 열광하는 글로벌 팬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다.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화력을 쏟아붓는 이들이 모이는 중심지로 브라질을 선택했다. 한편 미국 시장에서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된 넷플릭스에게 라틴아메리카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2023년 1분기 라틴아메리카 지역 유료 가입자는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했고, 회원권당 평균 수익 또한 전년 대비 2.7% 증가하며 두 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으로 주목받았다. 최근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를 막을 경우 구독자 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분석하기 위해 브라질과 멕시코를 제외한 남미 지역을 먼저 시험대에 올린 바 있다. 투둠이 2020년 1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첫선을 보이고, 팬데믹 기간 온라인으로 대체됐다가 다시 같은 곳에서 행사 개최를 결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콘텐츠 시장에서 팬덤의 몰입은 화제성을 견인하고 추가 수익을 창출하며 다음 작품의 발판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의 팬 커뮤니티는 언제 어디서든 싹틀 수 있다. 브라질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것처럼, 투둠은 팬심을 매개로 넷플릭스가 지향하는 초국가성을 체험의 형태로 펼쳐놓는 축제의 장이다. 팬덤 문화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에서 언젠가 투둠이 개최될 날을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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