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뎐>은 판소리와 극영화의 양식을 접목한 것이다. 판소리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악극에서 이야기와 음악과 리듬을 모두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서구 관객에겐 놀라운 시도로 보인다. 나는 춘향의 절개라는 서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제로 엮어나가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영화가 취하고 있는 형식 자체가 더 흥미로웠다고 생각한다. 즉 판소리 공연장면은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면서 그 텍스트에 대한 영상을 극영화로 보여준다는 점 말이다. 다시 말해서 판소리 공연을 구경하는 관객의 경우 소리꾼과 반주자밖에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단어들이 정확하게 환기하는 영상들을 보다가 갑자기 이미지가 뚝 끊기면서 판소리 공연을 보는 관객의 텍스트로 돌아가게 된다. 텍스트와 영상 사이의 반복되는 이러한 움직임은 임권택 감독의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미장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영상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판소리로 자주 돌아간다. 하지만 이것이 영화의 흐름을 깨는 것이 아니라 거리두기를 통해 두 부분을 접합시켜준다. 태형을 가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장면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는데 여기서도 태형을 가하다가 다시 판소리로 돌아온다. 그런데 감정이입이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리가 환기하는 상상력을 통해 태형의 고통이 더욱 잘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이 태형장면이 영화적으로 정말 훌륭하게 구축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여기선 영상이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게 아니라 소리를 통해서, 액자구조화(Mise-en-abime)와 거리두기를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모든 감정은 소리를 통해 전달되고 소리가 감정을 이끌어간다.
<춘향뎐>은 이미지와 텍스트와의 관계가 잘 짜여져 있다. 각각을 봐도 물론 좋다. 영상도 좋고 텍스트도 좋다. 하지만 사실 처음에는 너무 강렬한 색채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노란색은 너무 노랗고 빨간색은 너무 빨갛다. 한마디로 조명도 별로 없고 착색도 없고 해서 전반적으로 색이 굉장히 낡아 보였다. 그런데 이광모 감독이 어떤 자리에서 그런 색이 한국적인 색채라고 하더라. <춘향뎐>은 한국의 영화미학의 길을 오랫동안 탐색해온 임권택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샤를 테송, <씨네21> 253호 ‘두 프랑스 평론가가 본 <춘향뎐>과 한국영화’ 중에서 테송 부분 발췌
샤를 테송은 현재 프랑스의 대표적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과 파리3대학 영화과 교수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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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 테송의 <춘향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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