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2호 [인터뷰] '보 이즈 어프레이드' 아리 애스터 감독 “엄마라는 신, 자본주의라는 지옥”
2023-06-30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유전>이 과감한 오컬트적 상상력에 비례하는 서사적 밀도까지 갖추어 호평받은 장르영화였다면, 무질서와 방종의 리듬으로 달려가는 심리극인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누군가에겐 너무 명확하고 또 누군가에겐 너무 모호할 문제작이다. 두려운 엄마를 만나러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야 하는 그 남자 보(호아킨 피닉스)의 사정은 <미드소마>의 뒤틀리고 부서진 쾌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고통에 대해서라면 당신도 이미 잘 알 것이다. 편집증, 자기혐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대표되는 온갖 엄마 문제들, 프로이트의 억눌린 리비도, 실존적 불안 혹은 그게 무엇이든, 아리 애스터의 인간은 고통받는다.

장르와 리듬이 상이한 6개의 장을 비틀거리며 통과하는 3시간의 악몽 코미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설계한 아리 애스터를 만났다. 약 1000만 달러 언저리의 예산으로 완성한 <유전>과 <미드소마>가 제작비의 5~8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어 들이며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작사 A24의 ‘달링’이 된 36살의 뉴요커 감독은 장마 속에서 첫 한국 방문 일정을 홀로 소화하고 있었다.

- 신경증이 도사리는 가족 관계, 특히 서로를 향한 공포와 억압으로 점철된 부모와 자식간의 심리를 주로 다뤄왔다. 지금껏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당신과 엄마의 관계를 묻는 정신분석학적 호기심을 수없이 접했을 것 같은데, 비슷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심정이 어떤가.

= 짜증난다. (웃음) 영화가 끝날 때 내 일도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언론에 나서는 것이 천성적으로 즐겁지가 않다. 내게는 매우 위험한 상황처럼 느껴진다. 이미 내가 영화에서 한 말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만 할 뿐인 말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 말이 더 있다고 생각했다면 영화에서 말했겠지. 오스카 와일드처럼 인격이 우선이고 그의 말과 행동 또한 작품의 일부인 예술가들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런 타입의 예술가는 아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 있다면 정말 피하고 싶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럴 수 없으니 받아들이고 있다.

- 인터뷰에 시간 내주어 다시 한번 고맙다. (웃음)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뒤틀린 가족 관계가 일으키는 심리적 긴장과 성적 금기의 침범 같은 주제는 당신이 시나리오를 쓸 때 그저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 같은 것인가. 왜 여기에 천착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본 적 있나.

=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런 것들에 자연스럽게 끌리기 때문에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확실히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감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어머니는 우리가 태어난 장소이기도 하므로 모자 혹은 모녀 사이에 더욱 애틋하고 복잡할 무언가가 움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 경우는 그 유대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고려할 때 비로소 탐구하고 싶은 흥미로운 드라마가 생성된다.

- 초반부에 심리치료사(스티븐 헨더슨)는 보를 자극해(“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그에게서 죄책감을 읽어낸다. 보를 오이디푸스의 코미디 버전 혹은 광란의 버전 정도라 할 수 있겠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연극 장면을 포함해 그리스 비극의 모티프를 녹이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나.

= 그리스 비극에 대해 내가 대단히 재미있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신들이 너무 속이 좁고 하찮다는 것이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보에게 어머니가 그리스 신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특히 유대인 문화에서는 어머니를 신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많은 경우에 유대인들은 반드시 종교적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엄마만큼 더 높고 무서운 존재를 바라볼 수 없는 실존적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아, 어쩌다보니 유대인 농담을 한참 풀어 설명한 셈이 됐는데, 이만 말을 줄이겠다.

- 끔찍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만드는 것이 당신에겐 비극의 완충 작용에 가깝나, 아니면 더 가학적인 선택인가.

= ‘아! 이 영화는 코미디가 될거야’ 혹은 ‘이걸 코미디로 만들어아겠어’라고 의식적으로 결정한 시점이 있었다면 이 질문에 답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 같다. 하지만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항상 그저 코미디였을 뿐이다.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길을 간 것이었고 그래서 톤을 조절하는데 그다지 어떤 전략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영화는 내게 웃기고 재밌는 것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충실히 일한 결과물일 뿐이다. 질문에 대답하자면 어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농담이 가장 중요했다.

-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열쇠와 가방을 잃어버리는 초반부 설정은 AFI 대학원에서 발표한 2011년 단편 <보>에서 먼저 등장했던 것이다. <보>는 당신이 실제로 대학원 시절에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가기 전 촬영한 작품인데, <보 이즈 어프레이드> 속 보의 아파트 역시 단편과 거의 비슷한 분위기로 재현된 것이 흥미로웠다. 혹시 그 시절에 체험한 강렬한 경험이 있나.

= 아주 오랫동안 많은 문제가 있는 큰 건물의 작은 방에서 살았고 그 시절의 나는 돈이 없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단편 <보>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문 앞에 열쇠를 둔 채 잠시 집으로 들어간 사이에 열쇠가 사라지고 만다는 공포스러운 설정이었다. 그 사소한 불행이 촉매제가 되어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보>의 시도가 미래의 어느 때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확장되긴 했지만, 기존의 단편영화를 리메이크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비슷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전혀 다른 단계의 작품이다.

-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는 빈민가의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들, 교외의 중산층 가족, 숲속의 히피들, 그리고 대저택에 사는 CEO 엄마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일종의 자본주의 계급도를 보여준다.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는 당신의 단편 <세 라 비>(C'est la vie, 2016)의 노숙자, <뭉크하우젠>(Munchausen, 2013)의 중산층 모자, <베이지컬리>(Basically, 2014)의 부유층 모녀들이 모두 하나의 세계에 모인 것 같다. 창작자인 당신의 자리는 이중 누구와 가장 가깝다고 보는가.

= 생각해본 적 없는데 좋은 질문이다. 예술가가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계층 구조 어디쯤에 위치하게 되는 것일지의 문제가 정말 어려워진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싫어하더라도 미국에 사는 그 누구든 자본주의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본주의자로서 기능하는 것과 그 시스템에 대한 해설자 역할을 하는 것 사이에 있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그게 내가 하는 일 같다. 그리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간접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건드리고 있긴 하지만 논쟁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 내겐 중요하다. 그리고 오래 전에 만든 단편 영화들을 사실 다 지워버리고 싶다. (웃음) 나를 자연스럽게 자극하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마음만큼 위험한 자기 반복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 <유전> <미드소마>에 참여한 파벨 포고젤스키가 이번에도 함께했다. 보가 집에서 엄마, 택배 직원과 각각 통화하면서 극도로 두려움에 물드는 장면의 클로즈업 숏을 인상적인 촬영으로 거론하고 싶다. 오직 인물의 얼굴만 보여줄 뿐인 미니멀한 숏이지만 드라마틱한 카메라 무빙을 통해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 카메라가 그저 무언가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의 주제와 비트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궁리한다. 카메라의 모든 것은 의도적이어야 한다. 이 장면에서는 호아킨 피닉스의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끊지 않고 지속시키기로 했다. 처음에 보가 대화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애쓸 때는 돌리 숏으로 그에게서 멀어졌다가 비극적인 뉴스가 들려오는 순간 카메라가 멈추고, 그의 마음 속에 공포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카메라가 줌인한다. 돌리숏으로 시작해 줌숏으로 바뀌는 것이다. 촬영감독, 돌리 그립, 촬영조수(first assistant camera)와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 위해 집중하는 동안 현장은 훨씬 재미있어졌다. 호아킨이 훌륭한 연기를 펼쳤는데 포커스가 망가지거나 돌리가 덜컹거리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공포스러운 일 아닌가. 모두가 제대로 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장면이다.

- 이번 작업을 통해 배우 호아킨 피닉스와 유독 긴밀하게 교류한 듯싶다. 작업을 회고하거나 연기 방식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인데 당신과 나란히 A24 팟캐스트에서 대담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메소드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보니 어떻던가.

= 호아킨 피닉스는 매 장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이다. 그와 동시에 감독도 예상치 못했던 새롭고 직관적인 표현을 시도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거나 자신이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고 느끼면, 그는 그 상태로 계속 진행하기보다 무조건 멈추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한다. 거짓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배우이다. 호아킨과 나는 촬영 전부터 긴 시간 매우 협력적으로 함께 일했고, 나는 그에게서 나오는 다양한 모습에 끊임없이 흥분할 수 있었다. 한번은 블로킹이 어떻게 될 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촬영에 들어갔음에도 그와 현장 리허설을 마친 이후에 정말로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 당신은 이 영화를 “살지 못한 삶에 대한 영화”라고 압축적으로 묘사한 바 있다. 후반부에 보가 숲에서 유랑극단의 연극을 보다가 자신의 미래를 마술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이 이러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 좀더 주체적인 삶을 살거나 두려움에 덜 휘둘렸다면 어떤 삶을 살 수 있었을지에 대한 보 자신의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보려 했다. 보와 그의 사랑, 갈망과 욕망, 슬픔과 멜랑콜리를 가장 깊이 파고들었던 장면이다. 그의 마음속에 빠져들고 있지만 연극의 인공적인 느낌 역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여전히 현실이 아니라 연극이어야 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가장 가짜 같고 인위적인 시퀀스이지만 감정적으로는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장면의 세부 내용까지 포함한 아리 애스터 감독과의 1:1 인터뷰 전문은 <씨네21> 1413호 기획 기사에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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