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름을 바꿔서 찍어도 모르겠는데···.” 가타야마 신조 감독은 공동 연출자 우치다 에이지 감독과의 협업을 이렇게 평했다. 두 감독은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에서 사랑, 가족, 그리고 일본의 사회 문제를 여기는 태도에 있어 구분 불가능할 만큼의 동질성을 보여준다.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는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에 모인 인물들이 가족의 붕괴, 사랑의 실패로부터 겪는 갖가지 비극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화는 등장 인물들에게 탐정, 외계인, 닌자나 전문 암살자 등의 독특한 캐릭터와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B급 영화의 키치를 탁월하게 견지한다. ‘이상해도 괜찮아’라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슬로건이 딱 맞아떨어지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이야기’다.
- 공동 연출의 계기는?
우치다 에이지 처음엔 마리코 역의 이토 사이리 배우를 중심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를 기획했다. 열 명 정도의 감독이 릴레이 형식으로 작품을 찍어 합치는 방식이었다. 몇몇 프랑스 소설이 이런 방법론을 택하는 것을 보고 큰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가타야마 신조 감독에게도 협업을 제안했다.
- 협업 제안을 듣고 어땠나.
가타야마 신조 나도 물론 좋았다. (웃음) 릴레이식 구성이란 점이 맘에 들었다.
우치다 에이지 다만 영화는 여러 제작진, 배우들의 일정을 맞추기가 소설보다 훨씬 어렵지 않나. 결국 가타야마 신조 감독과 “그냥 우리 둘이 해도 되겠는데?”란 얘기를 하게 됐다.
- 총 6개의 에피소드 중 1, 3, 5부를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나머지를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연출했다. 겉보기엔 누가 어떤 챕터를 맡았는지 구분이 쉽지 않더라. 이를테면 과격한 성적 묘사가 담긴 3부와 5부는 우치다 에이지 감독의 스타일 같지만, 사실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작품이다.
우치다 에이지 일본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연출한 시리즈물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때문에 이런 이미지가 더 굳어진 것 같다. (웃음)
가타야마 신조 어쩌면 무의식중에 서로를 의식한 것 같다. 나도 완성본을 보니까 ‘내가 우치다 에이지 이름으로 영화를 찍어도 다들 모르겠는데··· 반대도 마찬가지고’라고 생각했으니까.
우치다 에이지 에이. 난 당신처럼 못 찍겠는데.
- 이유는?
우치다 에이지 ‘자매의 비밀’ 파트를 보면 사다마와 쌍둥이 자매가 영화감독 지망생 신을 두고 싸우게 된다. 그런데 완성본을 보니 내가 대본을 보고 예상했던 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뭐랄까 가타야마 감독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묘한 어두움이 있잖나. 난 그런 연출을 못할 것 같다.
가타야마 신조 에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음)
- 각 챕터를 긴밀히 연결하는 작업이 중요했을 것 같다. 어떤 논의 방식을 거쳤나.
가타야마 신조 이 부분이 참 재밌는데. 우치다 감독,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트리트먼트 수준의 큰 틀을 잡고 나서는 별다른 논의를 하지 않았다. 물론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마 남자처럼 둘이 공유해야 하는 인물에 관해선 상세한 아이디어를 나누긴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론 각자의 챕터에 딱히 관여하지 않았다.
우치다 에이지 요즘 공동 연출 방식의 시리즈물이 많아졌다. 그런데 보통 이런 시리즈물 제작 환경에서는 감독 및 제작진들이 아주 긴밀하고 빠듯하게 작업 과정과 방향성을 논의한다. 그래서 이번엔 오히려 완전히 반대로, 서로의 작업 과정을 제대로 모른 채 진행해보고 싶었다.
- 그런데도 둘의 공통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우선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 비슷하다. 인물들의 사랑이 항상 불행하고, 나쁜 사건의 씨앗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작품만 해도 호스트인 세이야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아야카, 한 남자를 두고 싸우는 암살자 자매의 이야기가 있다. 또 토즈카와 딸 미즈키의 재회가 실패하는 장면에서 과격한 성적 묘사가 쓰이기도 한다. 우치다 에이지 감독의 <3류들의 사랑>이나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종> 같은 각자의 전작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타야마 신조 일본에 차고 넘치는 이른바 ‘반짝반짝 연애물’을 만들고 싶진 않다. 인물들이 사랑에 난항을 겪거나, 설사 사랑에 성공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상실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주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편이다. 그들의 사랑은 더욱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측면이 우치다 에이지 감독의 성질과 통하는 것 같다.
우치다 에이지 행복하고, 예쁘고, 밝은 사랑이나 연애담은 너무 많다. 이런 관계는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그 이면, 사랑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슬픔과 복잡함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 가족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공통점이 느껴진다. 마리코는 어릴 적 아버지와의 트라우마로 성인이 돼서도 아픔을 겪는 인물이고, 사다마 자매 역시 아버지에게 암살 훈련을 받으며 비극적 삶에 돌입했다. AV배우 딸 미즈키를 만나지 못하게 된 토즈카의 경우도 그렇다. 가족의 붕괴와 불행이 전면에 드러난다.
가타야마 신조 일본에서 가족, 특히 아버지의 존재감과 힘이 점차 줄어간다고 느낀다. 전작 <벼랑 끝의 남매>, <실종>에서 꾸준히 표현한 주제이기도 하다. 사회 체계의 관념적인 붕괴가 최근엔 구체적인 불행과 사건으로 드러나는 상황이다.
우치다 에이지 굉장히 좋은 지적이다. 일본이란 나라의 상황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란 이름에 담긴 도덕, 인연, 유대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뉴스를 봐도 가정 폭력, 가족 간의 갈등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특히 가부키초가 속한 신주쿠 지역의 사회적 지형도는 더욱더 심한 경향이 있다. 가령 <가부키초의 탐정 마리코>는 시부야 같은 지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웃음)
가타야마 신조 가부키초를 보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란 생각이 든다. 일본이 마주한 각 시대에 맞춰서 모양새가 금세 바뀌는 장소다.
- 엔딩의 의미도 묻고 싶다. 인간들로부터 도망치던 외계인이 결국엔 지구를 떠나려 한다.
가타야마 신조 이건 나도 궁금했다. (웃음)
우치다 에이지 아하. B급 영화의 문법에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담고 싶었다. 요즘 일본엔 관광이나 거주 목적으로 많은 외국인이 찾아온다. 예전엔 이런 이방인들이 일본에 이주하고 정착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쉬웠다. 이런 자유로움과 관용이 최근엔 많이 사라진 인상이다. 그러니 지구에 있던 외계인마저도 ‘지구는 살 곳이 못 돼!’하며 떠나는 B급 영화의 감성을 구현해 봤다. 난 11살 때까지 브라질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이주했다. 그때 살던 규슈 지역은 특히나 더 보수적인 사회였다. 그래서 나도 ‘여기서 살기 너무 질린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런 경험이 영화 스타일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 차기작 계획은?
가타야마 신조 러브 스토리 하나를 구상 중이다.
- 또 아주 불행한 사랑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웃음)
가타야마 신조 아니다. 물론 아주 행복하진 않은데, 가끔 불행한 정도. (웃음) 아무튼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하려 한다.
우치다 에이지 내년쯤 호러 영화 개봉을 준비 중이다. 데이팅 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