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더 썬’, 정신질환을 투과해 드리우는 가족관계의 가학성
2023-07-19
글 : 임수연

이혼 후 새로운 가족과 뉴욕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변호사 피터(휴 잭맨)에게 전처 케이트(로라 던)가 찾아온다.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라스)가 한달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고 그동안 등교하는 척만 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보는 아들의 얼굴에는 증오가 가득하고 가끔 그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라는 케이트는 자신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팔에 자해를 하며 “인생이 버겁다”는 니콜라스가 아빠와 어린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터는 아들이 심각한 우울증까지 앓게 된 것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을 안고 부인인 베스(버네사 커비)와 함께 살고 있는 뉴욕으로 니콜라스를 데려온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A 학점을 받았다거나 파티에 초대받았다는 일상을 공유하는 니콜라스는 점점 호전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이를 키우느라 분주한 베스 입장에서는 유부남에 아이까지 있었던 피터와 왜 사랑에 빠졌냐며 자신을 원망하는 10대 소년과 부대끼며 사는 일이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니콜라스가 등교를 거부하고 자해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피터는 아들을 크게 혼내고, 이 사건은 니콜라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소설가, 극작가 출신이었던 플로리앙 젤레르 감독은 이른바 ‘가족 3부작’이라 불리는 자신의 연극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전작 <더 파더>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가족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더 썬>은 사춘기 10대 소년의 우울증을 중심으로 가족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겪는 혼란과 그로 인한 파장을 그린다.

<더 파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앤서니 홉킨스가 피터의 아버지 역으로 재등장한다. 이는 동명의 연극에 없었던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로,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부자 관계의 역학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제목이 칭하는 ‘아들’은 니콜라스이면서 피터이기도 하다. 유명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 대통령 선거 운동 팀 합류를 앞둔 피터는 니콜라스가 겪는 정신질환 문제를 먼저 직시하고 소통하기보다는 아들이 얼마나 학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자꾸 확인하려고 하는데, 이는 피터 자신이 겪었던 일이기도 하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편적으로 갖는 인정욕구 불만을 보여준다. 다만 이들의 관계 회복을 희망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니콜라스의 정신질환이 어떻게 심각해지는지 보여주는 비극을 택한 가운데, 부자의 행복했던 순간을 보여주는 플래시백이나 상상 장면의 기능이 모호하다는 점이 아쉽다.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하던 말을 똑같이 내뱉고 있더라. 이젠 내 차례가 된 거지.나도 아버지 같은 인간이 되고 말았어.”

피터는 극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니콜라스를 꾸짖은 후 자신이 했던 말이 아버지가 했던 그것과 똑같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대에서 세대로, 가족의 갈등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감독의 시선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대사다.

CHECK POINT

<사도> 감독 이준익, 2014

한국에도 삼대로 이어지는 부자 관계와 정신질환을 다룬 영화가 있었다. <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8일의 시간을 중심으로 영조(송강호)와 사도세자(유아인) 부자의 비극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플래시백으로 짚어나간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가 정조(소지섭)와 후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며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쟁의 희생양으로 보는 가설 대신 보편적인 가족 이야기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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