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2023-07-24
글 : 이다혜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멜로디를 떠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30초 정도였다고 한다. “피아노 앞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순간에는 이미 화음을 갖춘 멜로디가 악보의 오선지 위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투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둔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단 1분, 2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새로운 곡이 탄생할 가능성도 커지지 않을까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고 산문집이다. 2014년 중인두암이 발견된 이후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그가 중인두암 치료 이후인 2020년 4월 직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거듭하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차분한 고백으로 책의 서두를 연다. 특정한 컨셉이 있다기보다는 죽음을 앞두고 신변 정리를 하듯 지난날에 대해 써내려간 책이어서인지, 고요하고 친밀한 인상을 준다. 다소간은 두서없게도 느껴지지만 그래서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섬망 증상을 겪으면서 어째서인지 한국의 지방 병원에 와 있다고 믿었던 일에 대한 소회는 우스꽝스럽고도 서글프다(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노화를 실감한 순간들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의 죽음에 앞선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글은 엄숙함 속에서 읽어내려간다. 음악 이야기는 기대만큼 충분하기도 하고 기대보다 적기도 하다. 정말로, 글로 하는 신변 정리처럼 느껴지는 책이니까.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음악을 맡은 이유 중 하나는 파트너의 설득이었다. “지금 전세계에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한테 직접 음악을 부탁받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 거 같아? 암이 재발해서 죽어도 좋으니까 그냥 해.” 이런 살얼음 위를 걸으며 종종 뒤를 돌아보는 이의 마음이 책에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속에는 두려움이나 후회가 아닌 웃음과 만족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충만한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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