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불가해한 타인을 만나는 영화적 체험을 위해, ‘러브 라이프’ 후카다 고지 감독
2023-07-27
글 : 정예인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던 타에코(기무라 후미노)에게 예기치 않은 비극이 닥친다. 아들 케이타, 남편 지로(나가야마 겐토)와 함께하던 시간이 무너지며 전에 없던 슬픔에 잠긴 타에코. 그때 홀연히 나타난 전남편 신지(수나다 아톰)로 인해 타에코는 충동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러브 라이프>의 후카다 고지 감독은 선과 악의 얼굴을 겹쳐놓고, 빛과 그림자를 적확히 사용해 홀로 선 인간의 존재론에 대해 논한다. 2010년부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나란히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아온 후카다 고지 감독은 현재 일본영화계의 제작 환경 개선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러브 라이프>를 제작하게 된 배경은.

= 20대 초반에 접한 야노 아키코의 노래 <Love Life>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Love Life>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은 할 수 있어”라는 가사가 있다. 언뜻 보기에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들리는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부른 노래라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그 전제에 끌렸다. 영화를 만들고 난 뒤 야노 아키코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도 “우리는 고독하다”는 걸 전제로 사랑에 대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와 세계관이 맞닿아 있다는 게 기뻤다. 영화 제작을 현실화한 것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가메다 유코 프로듀서와 만나면서다. 부천에서 처음 만난 가메다 프로듀서와 일본에 돌아가 함께 작업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후 <러브 라이프>의 시놉시스를 전달하면서 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됐다.

- 타에코의 전남편 신지 역의 농인 배우 수나다 아톰이 일본 수어가 아닌 한국 수어로 연기했다.

= 신지는 농인이면서 일본과 한국의 혼혈이기 때문에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 수어 전문가를 현장에 배치하고, 온라인으로 한국과 연결해 수어를 체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현장의 무드 메이커를 맡아준 수나다 아톰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으로 농인 배우와 작업한 것이어서 촬영 초반에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이제까지 나의 촬영 현장에 농인이 없었다는 것이야말로 문제적인 현상이라고 느껴졌다.

- 신지의 국적이면서 영화 후반부의 배경으로 한국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이번 작품에서는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를 그리는 것이 중요한 테마였다. 그런데 이런 거리감은 2차원의 스크린에서 표현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지적한 부분인데, 수평적인 거리감은 수직적인 거리감에 비해 관객이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피사체 사이가 10m 떨어졌는지 20m 떨어졌는지 감각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래서 <러브 라이프>에서도 아파트 단지 내에 마주 보고 있는 2개의 건물과 바다 건너의 지역인 한국을 주된 배경으로 설정해 인물간 거리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한국은 일본 입장에서 볼 때 배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외국이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는 한국 문화에 친근감이 있었기에 한국을 무대로 삼았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에서 촬영은 진행할 수 없어 한국인 지인의 의견을 묻고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는 식으로 해서 한국의 결혼식을 최대한 잘 묘사하려 했다.

-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중요한 화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 그건 나의 인간관, 세계관에서 기인한 지점이 아닌가 싶다. 나는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고독하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를 좁히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자 한 것 같다.

- <러브 라이프>에는 양가적인 측면이 어우러져 있다. 선과 악의 얼굴이 한 인물 안에 녹아 있고, 고독과 연대가 한몸처럼 묘사된다.

= 세상이 이항 대립적인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선인과 악인이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성 내에서 달리 보이는 게 아닐지. 예를 들면 회사에서는 ‘갑질’하는 상사가 집에 가서는 애처가일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복잡한 것은 복잡한 대로 스크린에 표현하려고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관객이 공감할 만한 등장인물을 만들 생각이 없다. 우리는 늘 불가해한 타자와 타협하며 살아간다. 알 수 없는 타인을 만나러 가는 경험이야말로 영화적 체험일 것이다.

- 타에코의 고독이 느껴지는 신이 많다. 어둠이 내려앉은 집 안에 홀로 선 타에코를 롱숏으로 포착한 장면이나, TV나 창문에 비친 타에코의 모습을 담아낸 순간이 특히 그렇다.

= 타에코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 장애를 가진 전남편을 보호하는 존재라는 관계 안에서 자기 위치를 정립해간 인물이다. 영화 후반의 결혼식에서 타에코는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신지가 하나의 자립한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처음으로 타에코는 고독해진다. 그런 타에코를 롱숏으로 담아내려 했다. 또 나에게 있어 영화의 쾌감은 빛과 그림자를 잘 다루는 데 있기 때문에 반사되는 장면을 의식해서 포착하고자 했다.

- 유럽영화계와 연이 깊다. <하모니움>으로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옆얼굴>로 로카르노영화제, <러브 라이프>로 베니스와 토론토 등지의 관객을 만났다.

= 일본은 문화 예산이 적어서 프랑스의 CNC나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처럼 영화업계를 뒷받침하는 지원이 거의 없다. 특히 독립영화는 일본 내 자본만으로는 제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외의 지원을 받았다. 프랑스나 유럽에서 지원금을 받으면 유럽 배급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비교적 유럽 진출에 용이하다. <러브 라이프>는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CNC)의 세계영화관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이고, <하모니움>과 <옆얼굴> 역시 프랑스, 유럽 영화업계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 일본 영화업계의 노동환경에도 관심이 많다고.

= 2010년에 일본영화계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결성된 인디펜던트 시네마 길드에 공동대표로 참여하거나, 코로나 이후 위기에 처한 미니 시어터에 관련된 기부금을 모으기도 했다. 현재는 바빠지면서 시네마 길드의 공동대표는 그만둔 상태지만, 계속해서 창작자들의 노동환경을 정비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영화계는 국가간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한일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도 향후 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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