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물꽃의 전설’, <물숨> 7년에 이어 다시 6년, 제주 해녀 문화는 계속될 거라는 전언
2023-08-30
글 : 이유채

96살 현순직과 41살 채지애가 제주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은 영 어색하다. 그들은 해녀이기 때문이다. 현순직은 뛰어난 기량으로 일찍이 최고수 ‘상군 해녀’가 되어 87년간 물질을 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채지애는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해녀 어머니와 같은 길을 택한 지 10년이 채 안됐다. 그런 두 해녀가 지금 한배를 타고 ‘들물여’라는 곳을 향해 가고 있다. 그곳에서 현순직만 봤다는 바닷속 물꽃을 찾기 위해서다.

우도 해녀들을 7년간 취재한 다큐멘터리 <물숨>(2016)을 만들었던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이 다시금 제주 해녀 곁으로 돌아왔다. 감독은 6년간 작업한 신작 <물꽃의 전설>로 제주 해녀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고 가치를 발굴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영화는 은퇴한 현순직의 이야기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채지애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되는데, 신구 세대의 이야기가 오가는 구조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제주 해녀 문화가 앞으로도 전승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낙관이 생겨난다. 현순직 파트에서는 그의 구술 기록을 토대로 장면을 구성한다. 그가 물질하러 갔다는 지역들, 일하면서 보았다는 해양 생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관련한 사진이나 영상을 띄워 현순직 해녀의 경험과 기억을 풍부하게 재현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오늘날의 해양 오염 문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현순직이 자신이 본 물꽃을 묘사하자 흐드러지게 핀 붉은 물꽃 장면으로 전환되지만 그것은 바로 이어지는 전멸한 현실 바닷속 장면과 대비되어 파괴된 해양생태계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한다. 이 대목까지 포함해 영화는 후반부에서 산업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어 하루를 공친 해녀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바다 밑에 가라앉은 부식된 구조물들을 구석구석 비춰 해양오염으로 위협받는 해녀들의 일터와 생계 문제까지 짚어낸다. 험난했던 물질의 경험을 말하는 현순직의 목소리에 끌려 나온 바다 장면들이 인상 깊다. 낭만성이 쏙 빠진 바다는 동료를 삼키고 밥벌이를 위해 목숨 걸고 들어가야 할 잔인하고도 무서운 공간이 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