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을 10번 봤다거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20번쯤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까지 보고 또 보는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나의 최다 N차 관람 영화는 영어 섀도잉을 해보겠다며 선택한 <라라랜드> 되겠다. 스스로의 노래 실력에 크게 실망해, 영화에 등장하는 두 번째 노래 <Someone in the Crowd>까지만 열심히 따라하다 반복 관람하길 중단했다. 어쨌거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116회나 본 관객이 있다는 소식에 꽤 놀랐다. 8월30일 열린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116회 예매한 관객의 사례가 소개됐다. 이날 포럼에선 ‘소확잼(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 역주행, 서브컬처의 부상, 비일상성’이 코로나19 이후 관객의 영화 소비 트렌드가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디깅 모멘텀(Digging Momentum).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깊이 파고들어 그 행위로부터 만족감과 행복감, 성장의 동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도 이런 디깅 모멘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116회 예매한 관객의 경우처럼, 좋아하는 콘텐츠에 돈과 시간과 정성을 기꺼이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크린 안팎에서의 놀이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관객들, 특전을 갖기 위해 수고를 마다않는 관객들은 극장을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라 팬덤이 단합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으며, 새로운 온라인 문화를 통해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장시키고 있다.
과몰입이 창작의 길을 터준 사례도 있다. 권하정 감독은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를 통해 팬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다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입는다. 다큐멘터리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가수 이승윤이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우승해 스타덤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팬이었던 권하정 감독이 ‘내 가수 뮤직비디오는 내가 만든다’며 영화과 친구들(김아현, 구은하)과 의기투합해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게 되는 과정을 담는다. ‘최애와의 작업’을 실현한 진정한 드림 컴 트루! 어떻게 ‘최애와의 작업’을 이룰 수 있었는지 듣고자 가수 이승윤과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팀을 <씨네21> 스튜디오에 불렀는데, 그들은 “팬과 스타의 관계를 넘어 절친한 동료 예술가”가 되어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있었다. 이번주 특집이 과몰입인 만큼 이승윤에게도 이런 질문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살면서 미치도록 몰입해본 대상이나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상이 있는지. 돌아온 대답은 “음악”이었다. 음악 그 자체를 덕질했다는 이승윤은 결국 가수가 되었고, 이승윤을 진심으로 좋아한 팬은 감독이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바야흐로 과몰입의 시대’라고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제 무엇이 될 차례인가. 오늘도 과몰입 아닌 과로하다 날이 저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