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서 참기 힘든 순간은 극 중 유튜버나 BJ의 방송 장면이 등장할 때다. 인터넷 개인 방송이나 광고 영상은 보고 싶지 않을 경우 스킵하거나 음소거 버튼을 누를 수 있지만, 작품에 삽입된 방송 장면은 서사 전개에서 결정적인 정보를 노출할 때가 많기에 관람을 포기할 작정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참고 넘기기 마련이다. 개인 방송 장면에서 느낀 곤란함은 파운드푸티지 방식의 장르영화를 볼 때와 유사한, 강조된 리얼리티에 의한 곤란함이다. 리얼함을 겨냥하는 장르 안에서 사실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오히려 사실성과 멀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드라마 <마스크걸>의 주인공 김모미(이한별)는 밤에는 ‘마스크걸’이라는 이름의 BJ로 이중생활을 하는 회사원이다. 검은 머리에 무채색 정장 차림의 모미는 퇴근 이후에는 두눈을 제외하고 온 얼굴을 덮는 반짝이는 마스크에 밝은색 가발을 쓰고,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강조되는 짧은 원피스를 입은 마스크걸이 된다. 그는 손담비의 <토요일밤에> 등 당대 최신 유행 댄스곡에 맞춰 춤을 추거나, 스스로 만든 벌칙을 카메라 앞에서 수행하며 시청자를 기쁘게 한다.
1화의 이야기는 이와 같은 변신 스토리와 이중생활의 묘미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개인 방송을 묘사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방송 콘텐츠를 활용하는 드라마의 방식이 충분히 개인적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세태 반영이나 서사 진행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실제 참여한 이들이 느낄 재미를 설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스크걸은 익명의 개인이 만나 친밀하게 교류하는 장으로서의 개인 방송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 실제의 만남이 개입하면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송 바깥에서 발생한 일이다. 방송 장면만큼은 방송인과 시청자가 서로의 욕망을 적절히 충족하는 평화로운 창구처럼 보인다. 마스크걸이 술에 취한 상태로 방송하다가 노출 사고를 일으키는 자극적인 장면에서조차, 시청자들이 쏜 하트가 화면을 수놓으며 노출을 가리는 모자이크로 기능한다. 하트는 늘 적절한 순간에 오차 없이 터지며 마스크걸의 움직임과 변신에 반응하는 특수효과의 본분을 다한다.
2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주오남(안재홍)은 1인 방송 소비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욕망을 잘 보여준다. 특히 영상을 보는 장면에 등장하는 360도 패닝숏은 방송과 실제의 연속성의 환상을 강조한다. 화면에서 마스크걸이 얼음을 깨면 주오남 역시 얼음을 씹어 먹고, 마스크걸이 와인을 마시면 함께 와인을 마신다. 주오남이 건배하듯 스크린에 잔을 부딪치는 순간, 드라마는 유리잔이 부딪치는 음향을 삽입하며 그의 환상에 동조한다. 이는 세상에 소외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작은 환상이다. 주오남은 세상을 자기 뜻대로 바꾸진 못하지만, 작은 화면 앞에서만큼은 세상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연속과 분리
360도 패닝숏에서 엿보이는 연속성에 대한 욕망은 김모미의 욕망과 충돌한다. 김모미는 마스크걸과 자신의 명확한 분리에서 힘을 얻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분리의 경향은 마스크를 쓴 얼굴의 본질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시청자는 이미 마스크걸이 김모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다. 설정의 진실과 별개로 실제 마스크 뒤 인물이 김모미를 연기한 배우와 같은지 두개의 눈만으로는 명확히 가늠하기 힘들며, 이로 인해 다른 차원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마스크걸이 내는 목소리 역시 마스크에 눌린 흔적 없이 말끔하게 들려오기 때문에, 마스크 쓴 얼굴과 유리되어 보인다. 마스크걸은 손짓과 고갯짓 등의 제스처를 적당히 섞어가며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보충하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인형 탈을 쓴 채 성우의 목소리에 맞춰 연기하는 보조 출연자와 비슷해 보인다. 실제로 제작진은 춤 장면을 비롯한 몇몇 장면을 다른 배우에게 맡겼으며, 특별히 진위를 의심받지 않았던 목소리조차도 같은 역할을 연기한 이한별과 나나의 목소리를 합성하고 변형한 결과물임을 밝혔다. 마스크를 쓴 얼굴과 목소리 사이 싱크가 맞지 않는 기묘한 분리의 경향은 드라마 안팎의 이야기를 통해 보충되며 마스크를 쓴 얼굴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마스크걸의 말하기 방식은 입술이 고정된 채 말을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복화술에 가깝다. 마스크걸의 복화술은 시청자들이 마스크걸에게 환상을 투영하고 서로에게 원하는 말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반면 복화술을 억눌린 속마음의 내비침으로 이해할 때 마스크걸과 김모미 사이의 격차는 줄어든다. 모미와 동료 상순(김가희)은 메신저를 통해 일대일로 대화하며 회사의 천태만상을 논평한다. 이들의 대화는 외화면 내레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아침부터 상사에게 커피를 타주는 동료 아름(박정화)과 아름이 타주는 커피가 맛있다는 상사의 성희롱 발언은 두 사람의 메신저 중계 덕에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들의 대화는 포커페이스라는 마스크 뒤에 피어난 속마음 말풍선이다. 이런 방식의 복화술은 사회생활을 할 때 장착해야 할 필수적인 기술이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를 놓고 봤을 때 주목되는 복화술의 순간은 공감을 불러오는 대화보다는 인물들이 혼잣말을 할 때다. 1화에서 “나는 마스크걸이다”라는 말로 포문을 연 드라마는 총 7화로 구성된 이야기 중 처음 5화를 다섯 인물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한다. 내레이션은 혼잣말이자 관객에게만 들려주는 복화술이기도 하다. 다섯 인물은 등장 순서에 따라 김모미, 주오남, 김경자(염혜란), 김춘애(한재이), 김미모(신예서)다. 이들의 이름이 곧 각화의 제목이며, 김모미를 제외한 네명의 인물은 직전 화에서 단역에 가까운 인물처럼 숨겨졌다가 다음 화에 이야기의 방향키를 쥔 인물로 부상한다.
여러 인물의 시점을 순차적으로 경유하는 전개는 이야기의 초점을 분산해 여러 장르를 무리 없이 뒤섞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1화에서 전형적인 오피스물처럼 보였던 드라마는 회를 거듭함에 따라 범죄 스릴러, 수사물, 로드무비, 성장물, 멜로드라마를 넘나드는 장르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각화의 주인공이 내레이션을 통한 자기 서술의 기회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마스크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의 일인칭 시점은 그 효과에 있어서는 삼인칭에 가깝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대신 서술되는 타인의 인생은 영화에서 부재한 인물을 다룰 때 주로 활용되는 방식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1985)에서 감독의 분신으로 보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내레이터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모나가 누구인지를 재구성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마스크걸>에서 주인공 김모미는 여전히 살아 있기에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완료되지 않고 이어진다.
매개들
네명의 인물들과 모미가 맺는 관계의 특징은 대부분 특정한 매개를 기반으로 성립한다는 점이다. 주오남은 인터넷 방송과 채팅을 통해 마스크걸과 접속하며 가까워진다. 직장에서는 옆자리에서 근무하는 동료임에도 제대로 대화하거나 눈을 맞춘 적이 없다는 사실과 대조적이다. 주오남이 김모미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터넷 기반 방송 매체가 필요하다. 김경자는 마스크걸을 찾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며 ‘강천’이라 이름 붙여진 지방 소도시를 전전하지만, 결정적인 정보를 얻는 창구는 인터넷 커뮤니티다. 처음에는 아들이 누구이고 왜 죽었는지를 알기 위해 컴퓨터를 배웠던 경자는 ‘오크다’, ‘갑툭튀’ 같은 인터넷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를 메모하고 습득하며 젊은 세대와 심리적으로 친밀해진다. 모미의 딸 김미모는 갓난아기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라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다. 미모가 마스크걸인 자신의 엄마와 접속하는 방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로부터 ‘마스크걸의 딸’이라는 소문에 시달린 미모는 컴퓨터를 통해 마스크걸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인터넷이라는 공개된 정보를 통해 마스크걸에게 다가간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런 면에서 매체가 보여준 만큼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관객이 지닌 한계점을 공유한다.
김모미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매개물이 필요한 다른 인물과는 달리, 김춘애는 김모미와 예외적인 관계를 맺는다. 성형 후의 모미가 ‘아름’(나나)이라는 가명으로 바에서 일하는 짧은 시간을 증명하는 춘애는 스스로 모미를 드러내기 위한 매개이기도 하다. 춘애는 인물을 비추어 반사하고 이중화하는 거울과 유사하다. 마스크걸을 아는 이들마저 착각할 정도로 닮은 외모부터 살아온 궤적까지 비슷한 두 사람은 긴 머리에 몸에 꼭 맞는 반짝이 옷을 맞춰 입고 함께 노래하고 춤춘다. 춘애를 폭행한 동거남 최부용(이준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양쪽에서 서로를 등지고 바깥으로 줄을 당기며 협력하는데, 이때 두 사람이 이룬 대칭성이 노골적으로 강조된다. 거울을 연상시키는 춘애와 모미의 관계만이 아니더라도 거울은 김모미와 관련된 특징적인 사물로 묘사된다. 이때 거울은 늘 카메라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1화에서 모미는 거울을 보던 중 한쪽 손을 들어 얼굴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가린다.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을 굳이 어렵게 보여준다. 인물이 직접 포즈를 취하는 대신, 인물을 적절한 위치에 세우고 카메라 렌즈의 좌우를 가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카메라 시점이 거울을 보는 인물의 시점과 일치함을 강조하는 이와 같은 숏은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을 인물의 일인칭 시점과 동화하길 원하는 드라마의 욕망을 노출한다.
거울과 카메라가 만든 인상적인 장면은 5화에도 등장한다. 마스크걸의 존재를 알게 된 미모는 조악하게 만든 금색 종이 마스크를 쓴 채 마스크걸을 인터뷰하는 연기를 한다. 이미지로는 마스크걸을 따라 하는 동시에 말과 행동으로는 마스크걸에게서 벗어나는, 기묘한 방식의 셀프 인터뷰인 셈이다. 미모가 마스크걸의 답변을 기다리듯 거울에 장난감 마이크를 가져다대는데, 다음 숏에서 카메라는 프레임으로 짜인 공간 내부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대리하듯 자신에게 들이밀어진 마이크를 바라본다. 그 숏에서 카메라는 마치 거울 내부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 거울이 뚫을 수 없는 단단한 표면이 아니라 자신과 닮은 존재가 사는 사각의 구멍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실현한다.
네모반듯한 거울의 형상은 수미쌍관의 드라마 형식과 조응한다. 드라마는 어린 시절 김모미가 학예회 무대에서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 바 있다. 이 장면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VHS 테이프에 녹화된 홈비디오 형식으로 미모에 의해 재생된다. 영상 속 어린 모미는 꿈이 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제 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밝힌다. 이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루지 못한 꿈의 애석함이 아니라, 마스크걸은 이제 매체를 통해서만 마주할 수 있는 존재로 완전하게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흑백의 의미
6화와 7화의 김모미는 마치 더는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는 듯이, 혹은 마침내 현재의 시점을 되찾았기에 회상의 내레이션은 필요치 않다는 듯이, 일인칭 시점 내레이션을 통한 혼잣말을 들려주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김모미(나나)가 교도소로 이송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6화는 고현정 배우의 김모미로 이어지기 전까지 컬러가 제거된 흑백으로 표현된다. 연출을 맡은 김용훈 감독은 이에 관해 예뻐지고자 하는 욕망이 제거된 모미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설명했지만, 이 말을 온전히 신뢰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애초에 모미(이한별)가 성형수술을 감행한 이유는 예뻐지려는 욕망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 이후 삶을 리셋해야 하는 필요 속에서 감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성형을 감행한 인물은 춘애였고, 모미의 욕망은 단순한 외모의 전환보다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되고 싶다는 데 있다.
흑백 화면과 함께 눈여겨볼 지점은 인물의 대사가 최소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모미가 등장한 이후 드라마는 일인칭 내레이션만이 아니라 인물의 대사량과 음량마저 제한한다. 모미는 입술을 최소한으로 움직인 채 복화술을 하듯 읊조린다. 말에서 아낀 에너지는 액션 시퀀스의 과격함으로 해소된다. 모미는 간통죄로 들어온 수감자에게 3일간 밥을 안 주는 교도소 내 암묵적 규칙에 저항해 그의 식판에 자기 밥을 덜어준다. 그 이후 교도소 내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안은숙(이수미)과 그 일파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 모미는 공격에 무너지기는커녕 더 세게 들이받아 결국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일련의 장면에서 보여준 액션들은 모미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특징과 더불어 일순간 무성영화에 가까운 기운을 보여준다.
무성영화가 유성영화와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은 이미지와 목소리의 분리에 있다. 쌓아온 이미지가 실제 목소리와 부합하지 않은 무성영화 시기의 스타 배우들이 유성영화 시기가 도래한 이후 곤란을 겪는 상황은 진 켈리와 스탠리 도넌의 <사랑은 비를 타고>(1952)에서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다. 유성영화 시기의 도래는 분리된 목소리와 얼굴의 통합을 의미했다. 이런 흐름에 역행해 다시 분리되고자 하는 욕망이 <마스크걸> 속에 잠재되어 있다. 물론 분리화 경향은 다중정체성을 지닌 오늘날 개인의 욕망을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때 <마스크걸>이 보여주는 분리화 경향은 이미지와 목소리 사이의 분리보다는 통합의 지표로서의 얼굴에 새겨진 분열에 집중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주요 인물들은 일견 김모미의 거울상처럼 보인다. 그들은 모진 인생을 살았거나, 성형을 했거나, 자기만의 환상을 키우거나, 잊을 수 없는 친구를 만났거나,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을 가진 존재들이다. 정작 분열된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김모미를 연기한 세명의 배우다. 첫 번째 모미를 제외한 다른 모미들에게 그들의 내면을 서술할 기회를 주지 않고 대사마저 최소화한 것은 세 사람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음을 증언하는 지표가 바로 목소리이기 때문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비슷한 배우들과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다른 배우 사이에는 두 가지 욕망이 충돌한다. 모미들의 삶에서는 단일한 존재가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욕망이 읽히고, 모미 바깥의 삶에서는 재구성을 통한 통합의 욕망이 읽힌다. 충돌하는 욕망은 마스크 아래에서 안전하게 통합된다. 마스크가 드러내는 건 매개가 곧 본질이 된 사회의 무표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