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이노센트’, 잔혹하고 위태로운 아이들의 시간
2023-09-06
글 : 소은성

이다(라켈 레노라 플뢰툼)의 가족이 주택단지로 이사를 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을 앞둔 부모의 관심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언니 안나(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에게 대부분 향해 있고, 어린 이다에게는 언니를 돌봐야 하는 책임마저 얼마간 주어진다.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떠나 한산하다 못해 인적마저 드물어 보이는 주택단지 주변을 이다는 혼자 서성인다. 그리고 이때 같은 또래인 베니아민(샘 아쉬라프)과 아이샤(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를 만난다.

두 사람과 함께 이다는 소망의 실현을 목격하며, 동시에 그것에 수반되는 공포의 세계로 접어든다. 베니아민과 아이샤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특히 안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아이샤를 통해 이다는 언어를 잃은 안나와 불완전하게나마 소통을 하게 된다. 반면에 단순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을 넘어선 베니아민의 능력은, 그가 가진 잔인한 기질이 더해져 이다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영화 <이노센트>에서 환기되는 공포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성격을 가진 어떤 것으로부터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린아이가 성장하면서 겪어내야 하는, 가족을 포함한 외부 세계가 그에게 부여하기 마련인 트라우마적인 형상이, 이다의 공포에 왜곡된 방식으로 끼어든다. 네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아무런 능력을 갖지 못한 이다의 시점에서 이 영화의 서사가 진행되는 것은, 그러므로 초능력의 발현이 허용되는 디제시스 세계와 보편적인 감정의 현실성을 관련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장치다.

이 점에서 과도하게 잔인하다고 할 수 있을 영화 안의 순간들 역시,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어린아이에게 부과되는 현실의 잔혹성을 지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순진무구한 다정함의 세계로 손쉽게 환원되는 어린아이들의 세계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반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노센트>는 요아킴 트리에의 <델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등의 시나리오를 함께 썼던 에스킬 보그트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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