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는 가족과 함께 도시 토리노를 떠나 찾은 알프스 산속 마을 그라나에서 마을의 유일한 아이이자 동갑내기인 브루노와 만난다. 변변찮은 배움의 기회 없이 방목장이나 벽돌공 일을 돕던 브루노를 안타까워한 피에트로의 부모는 비용을 전부 부담해서라도 브루노를 토리노의 학교로 입학시키려 한다. 하지만 브루노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고 브루노는 아버지 일터로 불려간다. 도시는 브루노를 황폐화시킬 것이란 사실을 직감한 피에트로도 이미 반발한 터였다. 그렇게 헤어진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장성한 뒤 우연히 한번 마주치지만 눈길만 주고받을 뿐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선다. 20대를 아버지와 단절한 채 보낸 후 서른이 넘어 그라나를 찾은 피에트로(루카 마리넬리)는 그간 브루노(알레산드로 보르기)가 자기 아버지와 긴밀한 유대를 형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시 대 산속 아이들의 구도는 일견 작품이 이항대립으로 구성된 드라마의 재판처럼 보이도록 한다. 도시와 자연, 정주와 방랑, 유식과 무지 등의 대비가 읽혀서다. 그러나 영화는 정반합의 변증법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들로서 피에트로의 빈자리를 브루노가 대신하고, 도시인 피에트로가 산속 브루노처럼 히말라야로 가 구도자의 행보를 보이며, 브루노가 도시 출신 라라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일련의 과정을 제시하며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서로를 침식하듯 닮아가 이항으로 경계 지우는 게 무위임을 일깨운다. 그러고는 피에트로와 브루노의 위치를 기어코 전환하면서 가장 친밀했던 둘도 결국 소통이 절대 불가능한 타자이며 이 관계의 다른 말이 우정일 수 있다고 웅변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세상의 중심에 위치한 수미산으로 들어간 사람, 그리고 수미산을 둘러싼 여덟개의 산과 바다에서 헤매는 사람 중 누가 더 현자인지 궁리하는 히말라야 사람들의 불교적 세계관과 대부분 후자로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는 피에트로의 판단을 바탕으로 허무의 철학을 강조한다. 으레 풍경을 중시하는 작품이 넓은 화면에 기대 스펙터클을 꾀하는 것과 달리 4:3 화면비로 풍경에서 쓸쓸한 감각을 추출해 작품의 주제와 공명토록 한 방식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 제7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