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진심을 담아 자연스럽게, ‘거미집’ 오정세
2023-09-27
글 : 정재현
사진 : 최성열

오정세는 본인과 본인이 연기한 <거미집>의 바람둥이 톱스타 배우 호세 사이의 싱크로율이 1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연히 호세의 사생활은 오정세의 삶과 1970년대와 2023년만큼 멀다. 오정세와 호세는 오직 프로페셔널한 배우라는 점에서 10%만 통한다. 호세는 김열 감독(송강호)의 디렉션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현장에서 무수한 소동이 연발해도 모든 난리를 수습하는 와중에 연기도 절륜히 끝마친다. 오정세와 호세 사이를 잇던 1할의 공통점은 어느새 10할, 100할이 되고, 관객은 언제나 그랬듯 스크린 속 오정세의 연기를 진짜라 믿게 된다.

- 호세는 ‘거미집’에서도 호세를 연기한다. 실제로 제작자나 감독으로부터 “정세 역을 제안하고 싶다”는 캐스팅콜이 오면 어떨 것 같나.

=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 영화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작품의 전체 컨셉에 어울린다면 기꺼이 응할 수 있다. 실제의 인물을 픽션 속에 끌어들여 오는 영화가 있지 않나. 그런 영화라면 ‘정세’로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열 감독은 ‘거미집’을 가리켜 “치정과 멜로, 호러, 재난물에 괴기물”을 오가는 영화라 말한다. 극 중 호세는 이 모든 장르를 전부 소화한다. 작품 속에서 다양한 톤을 오가는 작업이 배우 입장에서도 즐거운 작업이었을 듯하다.

= 배우로선 즐거웠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호세는 김열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걸 이해하지 못했다. 걸작을 만들고 싶은 김열 감독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오히려 호세의 최선이 영화 전체를 볼 땐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 70년대 한국영화 특유의 양식화된 표정과 대사 연기를 감쪽같이 재현해냈다. 이번 영화를 위해 참고한 자료가 있나.

= 처음엔 호세가 아예 연기를 못해서 영화에 방해가 되는 설정도 염두에 뒀다. 하지만 연기를 정말 독특하게 하는 것과 독특한 연기를 연기하는 것은 간발의 차이인데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연기도 꽤 하는 지금의 호세가 탄생했다. 물론 70년대 한국영화도 많이 찾아봤다. 지금 소구되는 연기 양식은 아니지만 당시 배우들에겐 그 연기가 진심이었다. (직접 기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씨를 재현한다.) “아이 아파라”라는 문어체 대사가 과장돼 보여도 그 속엔 진짜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 거다.

- 늘 자연스러운 연기를 고민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양식화된 연기에서 발견하려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나.

= 호세가 처음 등장해 “슛 들어갑시다!”라고 말할 때, UFC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를 떠올렸다. 맥그리거 그 친구가 링에 등장할 땐 우주 최강의 자신감을 뽐내며 들어오지 않나. 그래서 호세에게도 맥그리거와 같은 “나는 연기도 잘하고 현장에 없으면 안되는 존재야!”식의 자신감이 몸에 자연스레 뱄으면 했다. 어떤 촬영 현장에서 발견한 모습도 호세에게 가져다 썼다. 모 배우가 ‘컷, 오케이’를 들으면 매번 박수를 두번 ‘짜짝!’ 하고 치더라. 그게 그만의 자신감인지 루틴인지 모르겠으나 호세도 그 배우처럼 본인만의 자연스러운 시그니처를 가졌으면 했다.

- 배우들끼리 굉장히 사이가 돈독해진 현장이라 들었다. 촬영이 없을 때도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었다고.

= 한 공간에서 일상을 나누던 순간이 모여 좋은 현장 분위기를 만들었다. 극 중 단역 배우들이 현장에서 쉬고 있으면 송강호 배우가 멀찍이서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단역 배우를 바라보는 송강호 선배를 바라보던 그 순간의 낭만을 잊지 못한다. 대사가 없는 배우가 있으면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는 등 배우 개개인을 세심하게 존중해주는 시선이 촬영장에 가득했다.

- 서로를 향한 신뢰가 플랑 세캉스 신을 찍을 때도 유효했을 것 같다.

= 박정수 선생님이 우리 현장의 활력소였다.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플랑 세캉스 신을 찍을 때 김열 감독이 오 여사에게 건네는 “선생님만 잘하시면 돼요”라는 대사가 영화 안팎으로 절묘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특유의 투덜대는 유머 코드가 있으시다. 촬영 중 대사가 입에 잘 안 붙으면 감독님께 가셔서 “감독님 대사를 이렇게 쓰면 배우가 어려워서 어떻게 연기해? 감독님이 읽어봐요”라고 하신다. 그럼 김지운 감독님은 또 기가 막히게 대사를 잘 읽으신다. 그걸 들은 선생님은 “아니 감독님이 잘 읽으면 내가 뭐가 돼~” 하며 돌아가시고. (웃음)

- <남자사용설명서>(2012), <스위치>(2021)에 이은 세 번째 톱스타 연기다. 이쯤 되면 톱스타 연기도 익숙하지 않나.

= 30번 정도 더 해야 익숙할 거 같은데! 스스로도 주변 환경도 아직 스타라는 칭호에 익숙하지 않다. 익숙해지려면 앞으로 더더욱 30번은 더 톱스타 배역을 연기해야겠다.

- 배우가 배우를 연기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다. 이미 연기자 본인이 잘 아는 배우라는 직업 자체에 집중하는 쪽인가, 아니면 직업보단 캐릭터의 내면을 파고드는 쪽인가.

= 당연히 둘 다 고려한다. <거미집>의 경우 나무보다는 숲을 보려 했다. 상대배우와의 호흡, 상대의 시선에 비친 호세 등 캐릭터의 합을 신경 쓰며 연기했다. 최종본엔 편집됐지만 민자(임수정)와 호세가 연기 합을 맞추는 신이 있었다. 극 중 호세가 카메라 욕심이 있어 아무리 민자가 쳐다봐도 카메라에만 눈을 맞춘 채 대사를 쳐서 민자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엇갈린 호흡을 연기하는 데도 장면이 풍성해지는 경험을 현장에서 했다. 티키타카를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장면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묘한 티키타카가 만들어졌달까.

- 만약 걸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크랭크업한 영화를 다시 찍자는 제안을 한다면 응하겠나.

= 이틀이면 하겠다! 사흘이면 고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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