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스타가 된다는 것, ‘거미집’ 정수정
2023-09-27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거미집>의 한유림은 타고난 스타이자 재능 있는 배우다. 급하게 잡힌 ‘거미집’ 추가 촬영에 툴툴거리며 혼자 빠져나갈 궁리를 하지만, 중요한 순간 카메라 앞에서 돌변해 연기력과 화면 장악력 하나로 위기를 뚫고 나간다. 관습을 깨고 트렌드를 이끌며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던 정수정은 70년대 최고의 라이징 스타의 얼굴을 설득하는 고전적 매력을 뽐내며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영화판의 역설적인 에너지를 설득한다.

- <거미집>은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 일단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 읽기 전부터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겼다. 거기에 김지운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이 함께하신다고 하니 대사가 단 한줄이라도, 한 장면만 출연한다고 해도 꼭 영화의 일부분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70년대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통통 튀는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었다.

- <거미집> 같은 앙상블 코미디는 처음 경험해본 것인가.

= 독립영화에서 핑퐁치듯 대사를 주고받는 신을 연기했던 경험이 이번에 도움이 됐다.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호흡이 만들어졌다. 그간 보지 못했던 서로의 연기 톤을 보다 보면 저절로 리액션이 나왔다.

- 실제 70년대 말투를 익히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 혼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내가 70년대 말투로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감독님과 시나리오 리딩을 할 때 모던한 말투로 연기하니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시범을 보여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짐이 덜컥 쏟아진 듯해서 다소 충격적이고 두렵기까지 했다. 약간 과장된 호흡법을 따로 배우고 유튜브에서 70년대 한국영화 클립을 찾아보며 당시 말투를 계속 익혔다. 같은 시기 프랑스 등 해외영화도 찾아보며 그 시대 특유의 톤을 살펴봤다. 당시 드라마 촬영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거미집> 촬영이 있는 날에는 차 안에서 혼자 연습했다. 밖에서 하기에는 창피하니까. (웃음) 근데 하다 보니 그 대사는 그 말투로 해야 어울리더라. 그리고 그 말투는 유림의 메이크업, 헤어, 의상을 갖춘 후 세트에서 해야 제대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현대 말투로 연기하는 게 어색해졌다.

- 한유림은 비단 70년대에만 국한되지 않는 캐릭터처럼 보였다. 여우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 책임감 있는 스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연예인으로서 그는 어떤 인물이라고 봤나.

= 사실 실제 나와 유림은 많이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는 유림과 맞는 것 같다. (웃음) 감독님도 나와 유림의 이미지를 섞어보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너무 징징거리거나 짜증내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지 감독님과 상의하며 적당한 톤을 조율해나갔다. 유림은 기본적으로 배우가 되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스타가 됐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투명해서 오히려 순수해 보일 때도 있다. 사생활 면에서는 갖고 싶은 것을 반드시 가져야 성이 차는, 다소 아이 같은 면이 있지만 일적인 면에서는 프로페셔널하다.

- 흑백이 굉장히 잘 받는 마스크라서 놀랐다.

= 컬러보다 흑백이 나은 것 같다. 아예 흑백영화만 찍을까보다. (웃음) 아마 내 얼굴 선이 굵어서 그런가보다. 요즘도 흑백영화가 나오지만 사실 흔하지는 않으니까, 흑백 톤에 내 얼굴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연기할 때는 크게 다른 점을 못 느꼈는데 모니터를 할 때 신기했다.

- 한유림은 패션 면에서도 눈에 띄는 캐릭터다. 메이크업도 현대와 다르게 갈 수밖에 없었을 텐데.

= 라이징 스타라는 설정이기 때문에 스타일링에 무척 신경을 쓸 것이고, 원래 70년대 룩에 판타지가 있었기 때문에 잘 표현하고 싶었다. 트위기 스타일 등 다양한 시안을 찾아보면서 김지운감독님, 의상감독님, 스타일리스트 등과 논의하고 서로 맞춰나갔다. 메이크업은 속눈썹을 통으로 붙이고 눈썹 산을 오버스럽게 올리고 보라색 아이섀도를 은은하게 깔았다. 과거 스타일이라고 해서 자칫 촌스러워 보이면 안되고 예뻐야 했다. 원래 70년대가 멋진 스타일을 보여준 시대이기 때문에 당시 모습을 잘 살리려고 했다.

- 가수 크리스탈 시절에 순간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당시 경험이 <거미집> 유림의 스타성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됐나.

= 물론 내가 했던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거미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거미집>에서 보여줬던 어떤 움직임들은 내가 예전에 춤을 췄기에 가능했고,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가수 활동 경험은 내가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맡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올해 칸영화제를 다녀왔다.

= 사실 칸에 가고 싶다는 꿈을 감히 꿀 수조차 없었다. 내게 칸에 갈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거미집>을 촬영할 때도 칸에 이 영화가 가는지 안 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오롯이 작품에 에너지를 쏟았다. 현장의 좋은 에너지가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기운을 칸에 가기 전부터 느꼈다. <거미집>이 칸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꿈의 무대에 갈 수 있게 됐다니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내가 민폐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무척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영화제를 갔는데, 막상 가니 정말 재미있었다. 그래서 김지운 감독님에게 또 영화제에 오고 싶다고 했더니 영화를 많이 찍으면 된다고 하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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