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경미의 세계’, 모체로 연결되는 비극의 굴레
2023-09-27
글 : 박정원 (영화평론가)

배우 지망생 수연(김미수)은 극단에서 근근이 일을 하며 홀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연을 끊고 살던 할머니 영순(이영란)의 셋집을 정리해 달라는 전화를 받은 수연은 통영의 요양 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영순을 찾아간다. 7년 만에 만난 손녀 수연을 영순은 언제나 그랬듯 사납고 매몰찬 태도로 대할 뿐이다. 수연과 영순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긴장은 곧 해묵은 증오와 분노의 폭발로 이어진다.

구지현 감독의 <경미의 세계>는 엄마이자 딸인 경미라는 교집합으로 얽힌 손녀 수연과 할머니 영순의 깊은 감정의 골을 그려낸다. 가족간의 지독한 갈등과 상처를 그려낸 여타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경미의 세계> 또한 관객의 폐부를 건드리는 날카롭고 잔인한 대사들이 일종의 연료가 되어 극을 이끈다. 이영란의 열연이 돋보이는 병원에서의 독설 장면이 특히 그렇다. 단식과 구토,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작가와 배우라는 직업 등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경멸하는 만큼 닮아있다는 것이 이들 3대 모녀의 복잡한 관계와 가혹한 운명을 암시한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인 CGK&삼양 XEEN상을 수상했다. 수연 역의 고 김미수 배우의 유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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