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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 타인의 취향이 궁금한 당신께, <씨네21> 고정 필자들의 LIST ②
2023-10-02
글 : 씨네21 취재팀

김민성 종이잡지클럽 대표 /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팀 망막의 독립잡지 <망막 02 설문대할망>

진짜 실력은 대부분 두 번째일 때 발휘된다. <에이리언2> <토이 스토리2> <터미네이터2> 등.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망막>은 제주 신화를 다루기 위해 제주에 직접 내려가 굿을 보고, 신화를 좇고,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그렇게 만들어진두 번째 흔적은 창간호만큼 아름답다. 사실 1호보다 더 괜찮다.

공항에 혼자 앉아 있기

어쩌다 보니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 대가로 월요일마다 새벽 5시에 공항 라운지에 앉아 멍하게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공항은 언제나 기묘한 흥분을 간직한 공간이다. 공항 한구석에 앉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이 모든 현실이 꿈인 것만 같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문학과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은 자기 삶과 창조물을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분명 글과 영화 속 세상은 허구고 가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허구 속에 기입된 사람들은 한번도 마주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프렌치 디스패치>가 활자와 잡지를 만드는 모든 이에 대한 헌사라면,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모든 예술을 만드는 창작자들을 위한 찬사다.

문보영의 시집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문보영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직접 번역하고, 평하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이 거대한 농담을 읽다 보면 그가 갖고 있는 활자에 대한 가늠할 수 없는 총체적인 사랑의 크기를 느끼게 된다.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숙면하기

가끔 불면을 해소하기 위해 영화관에 간다. 시네필도 영화인도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홀로 앉아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든다. 그렇게 나는 내가 본 영화에 대해 한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상영관에서 꾼 꿈들을 그 영화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시네마일지도 모르니까.

송형국 영화평론가 / 프런트 라인

에드 용의 논픽션 <이토록 굉장한 세계>

10여년 전부터 독서량의 절반 이상을 과학 분야로 채운다. 애슐리 몬터규의 <터칭>이 나의 감각을 알아차리게 해줬다면, 퓰리처상 수상 작가 에드 용의 이 책은 수많은 동물들의 마법 같은 감각을 알려줄 뿐 아니라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눈길 가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다.

7.2.2채널

집에서 영화·시리즈 보는 시간이 늘면서 기존 스피커를 7.2.2채널(주채널 7개, 서브우퍼 2개, 천장 스피커 2개)로 업그레이드했다. 어머나, 새들이 머리 위에서 퍼덕이고 포탄이 발치에 떨어진다.

파라마운트+ 드라마 <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

티빙에서 볼 수 있는 테일러 셰리든 작가의 신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권력자들의 관심은 정의사회 구현이 아니라 현상 유지를 통한 패권 관리에 있다는 점을 건조하게 들춘다. 정주행이 불가피하다.

애플TV

스마트TV 시대에 크롬캐스트처럼 쓸데라곤 하나 없는 물건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애플TV는 현존 스트리밍 디바이스 가운데 돌비 애트모스 콘텐츠의 최고치를 뽑아낸다. 같은 넷플릭스 영화를 봐도 다른 소리가 난다. 나는 이제 명작이란 소리로 완성된다는 걸 아는 귀가 되었다.

PCR

달리기를 시작한 지 석달 됐다. PCR은 ‘Pyeongchang-dong Club of Runners’의 약자다. 클럽 멤버는 총 3명. 나와 아내, 그리고 친구처럼 지내는 필라테스 선생님이다. 따로 또 같이 10km 정도를 천천히 달린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내 호흡을 바라보는 것. 씁씁, 후후.

김수민 시사평론가 / 디스토피아로부터

점핑 피트니스

이 운동의 장점은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없다는 것. 단점은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간다는 것. 단점 없이 장점만 누리려면 두 가지를 지키면 된다. 발 앞꿈치로 뛰지 말고 발바닥 전체를 사용할 것. 복근에 힘을 줄 것.

뉴진스의 노래 <ETA>

뉴진스는 영상 조회수 대비 음원 청취수가 높다. 음악성을 높게 평가하는 아재들이 많다. 멤버들 얼굴도 잘 모르지만 5회 연속 들어도 좋다. 이전에 있었던 세상 모든 노래가 이 노래를 낳은 것 같다. 롹 스피릿도 느껴진다. 뒤늦게 찾아 읽은 가사에도 반했다.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

‘농구대잔치’, <슬램덩크>, <마지막 승부>의 시대에 난 초등학생 배구 선수였다. 그때 맺힌 한을 풀어준 작품.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는 다채로운 전법과 “공을 떨어트리지만 않으면 지지 않는다”가 위아래로 펼쳐진다. 지역대회 결승전 한 경기만으로 구성된 시즌3의 마지막 ‘싱크로고게키!’는 스포츠 애니메이션 사상 최강의 장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87년 여의도 광장 연설 (남진, 《님오신 목포항》에 수록)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사랑한 만큼 나도 여러분 사랑합니다. 나는 앞으로 내 모든 것을 여러분들께 바치겠습니다. 여러분이 내가 살아온 그 한 많고 서러운 세상을 다시는 살지 않는 좋은 세상의 길을 열어놓고 이 세상을 뜨겠습니다. 김대중이는 여러분의 김대중입니다.”

앨버트 O. 허시먼의 사회비평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경영 전문가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상대 분야의 특수성을 도외시하거나, 혹은 양측의 공통점을 간과하고는 한다. ‘지식인들의 지식인’인 앨버트 O. 허시먼은 이를 뛰어넘어 정치와 경영을 통합적으로 고찰한다. 읽는 시간보다 중간중간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긴 책. 난해해서가 아니다. 온갖 경험과 영감이 떠오른다.

임소연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 디스토피아로부터

래퍼 이영지

본업을 미치도록 잘하는 엔잡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도 좋고 <뿅뿅 지구오락실>도 좋지만 <쇼미더머니>의 래퍼 이영지가 단연 최고다. 압도적으로 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해버리는 여자. 엄청난 대리만족을 준다.

Mnet 예능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2>

남자들 다 이겨먹는 여자를 보는 것도 짜릿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싸우는 여자들 무리를 보는 것도 짜릿하다. 보고만 있어도 도파민 수치가 상승한다. 춤을 추든, 정치를 하든, 축구를 하든 여자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나를 한없이 고양시킨다.

그레타 거윅의 영화 <바비>

첫 장면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휠체어 탄 바비, 유색인종 바비 등 다양한 바비들만의 파티 장면을 보며 ‘여성, (남성) 유색인종, (남성)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 여성, 아시안 여성, 흑인 여성 등 눈앞에서 빛나는 여자들의 다양성에 전율을 느꼈다.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사는 것도 빡센데 게임마저 빡세게 하고 싶진 않다. 돈이 필요하면 나무를 흔들어 떨어지는 과일만 팔아도 되는 게임. 늘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귀여운 NPC 섬 친구들과 소소하게 인사를 나누는 평화로운 시간이 좋다.

유튜브 채널 <슈르연구소>

유사과학을 들으면 토하는 로봇, 머리에 쓰는 코인 노래방, 모기퇴치기계를 만드는 20대 여성 유튜버. 여성 공학자를 연구하는 나의 직업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제 직접 제작하는 물건들이 너무 하찮고(?) 웃겨서 자꾸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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