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사>엔 다양한 무구(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각종 도구)가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한국 무속신앙이 사용해온 물건뿐 아니라 천 박사의 조수 인배가 활용하는 현대적 기계장치들까지 모습을 비춘다. 김성식 감독은 국립민속박물관을 취재하고 각종 사료를 참고해 <천박사> 속 무구들의 컨셉 아트를 직접 제작했다.
설경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설경’은 <천박사>의 서사를 지탱하는 핵심 아이템이다. 천 박사는 반쪽짜리 설경에 움직임을 제한받는 범천을 완전히 봉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원래 설경은 충청 지역의 굿판에서 쓰이는 종이 무구다. 귀신이나 생령을 잡아 가두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무당의 경문을 문자화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여러 장의 종이를 겹치고 조각하는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최근엔 제작의 명맥이 점차 끊기고 있다.
칠성검
칠성검은 천 박사가 애용하는 주요 무기다. 사람의 몸에 빙의한 귀신을 쫓아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다만 천 박사가 쓰는 칠성검은 반쪽짜리다. 천 박사의 과거에 얽힌 나머지 반쪽의 행방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밝혀진다. 김성식 감독은 한국 오컬트의 근원에서 칠성검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천 박사의 가업이기도 한 ‘당주무당’이란 농경시대에서 기원한다. 농사의 풍년을 위해 기도하고 농기구에 축복을 담는 역할이었다. 이에 김성식 감독은 “농기구라는 금속, 이를 통해 밥을 짓고 문명을 이룩한 불의 이미지를 칠성검의 외양과 효과에 가미했다”라며 “민속신앙 속 무당의 신성성이 최대한 허위가 되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놋쇠방울
천 박사가 강력한 무당이었던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놋쇠방울이다. 방울은 주위에 특정 귀신이 있으면 소리가 울린다. 천 박사가 늘 손목에 차고 다니며 작품의 초·중반부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동하는 기물이다. 김성식 감독에 따르면 영화 속 놋쇠방울엔 아주 작게 ‘범천’이란 글자가 한문으로 적혀 있다고 한다.
인배의 승합차
천 박사와 인배(이동휘)가 타고 다니는 퇴마 연구소 ‘하늘천’사의 전용 차량이다. 차량 실내에는 전통 무구들과 함께 온갖 기계가 실려 있다. 인배가 가짜 퇴마 의식을 꾸며낼 때 사용하는 장치들이다. 음향 콘솔을 원격으로 조종해서 귀신 소리를 들리게 하는 등의 속임수가 <천박사> 속에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