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남도영화제 시즌1 순천, 영화의 정원을 거닐다, 박정숙 남도영화제 사무국장
2023-10-11
글 : 이우빈
사진 : 백종헌

10월11일부터 16일까지, 순천에서 첫 번째 남도영화제가 열린다. 남도영화제는 전남 지역 고유의 자연, 음식, 관광 등 문화 자원을 한껏 활용한 종합 축제로서 첫발을 내디딘다. 외연만 커다란 게 아니라 내실도 튼튼하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를 직접 초빙한 김승옥 특별기획 등 지역색을 살린 부대 행사는 물론, 지역 영화인과 영화문화 활동가를 육성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영화제의 원활한 시작이 가능했던 이유는 10~20년간 전남의 영화·영상 기반을 닦아온 전남영상위원회(이하 전남영상위)의 몫이 크다. <동백아가씨> 등을 연출했던 다큐멘터리스트이자 현재 전남영상위·남도영화제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영화제 업무를 총괄한 박정숙 사무국장을 만나 남도영화제의 시작을 엿봤다.

- 남도영화제를 개최한 배경은.

= 전국 지역 중 관광 실적이 최상위권인 전남이지만, 영화 관련 문화는 약하다. 총인구가 200만 명쯤 되는데 인구 대비 극장 수와 극장 방문 횟수가 모두 최하위권이다. 목포시와 곡성군을 제외하면 마땅한 영화제도 없다. 영화 분야 등록 예술인도 광역도 중 가장 적다. 문화다양성과 지역문화에 이바지할 영화생태계가 취약한 거다. 이에 전남 지역의 영화문화 기반을 만들어가자는 공감대를 통해 전라남도와 전남영상위가 힘을 합쳐 영화제를 시작하게 됐다.

- 첫 개최지를 순천으로 정한 이유는.

= 남도영화제란 이름답게 22개의 전남 소속 시군을 대상으로 공모와 현장 실사까지 진행하여 첫 회 개최지를 순천으로 정했다. 순천은 영화문화·교통·숙박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자연· 역사·예술 등 풍부한 문화 자원을 가지고 있다. 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등을 개최하며 최근 가장 힙한 지역이다.

- 여행 프로그램 ‘씨네마트립’이 종합 축제의 성격에 어울려 보인다.

= 순천까지 왔는데 영화 한편만 보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 여행과 영화가 섞이길 바랐다. 2박3일 동안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면서 영화제를 즐기는 ‘운찌네 게스트하우스 in 순천’은 수도권 20~30대 관객들이 몰려 자리가 없더라. 또 순천의 요리 전문가와 함께하는 ‘남도미식여행’, 순천 선암사 체험과 함께 직접 사진도 남기는 ‘산가자스냅 in 남도영화제’ 등의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영화와 함께 순천의 모든 것을 느끼길 바란다.

- 특별기획 부대 행사인 ‘김승옥, 안개, 무진’도 눈에 띈다.

= 평소에 쉽게 뵙기 어려운 김승옥 작가님이 직접 행사에 참여해주신다. 4살부터 고등학교까지 순천에서 사신 데다가 매년 김승옥 문학상이 열릴 정도로 순천과 연이 깊은 분이다. 대표작 <무진기행>의 배경은 순천만습지고 그쪽에 오래 살기도 하셨다. 흔히 소설가로 알려진 영화인 김승옥의 삶을 남도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집중 조명하려 한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 <안개> (1967)의 각본과 주제곡 <안개>의 가사를 쓰셨다. <헤어질 결심>이 <안개>에서 모티프를 가져 왔고,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가 순천 송광사에서 핸드크림도 나눠 바르지 않나. (웃음) 그래서 <안개> 주제곡을 부른 정훈희 가수와 김승옥 작가의 만남을 마련했다. <안개> <헤어질 결심>과 함께 작가님의 유일한 연출작인 <감자>까지 상영한다. 김승옥의 자취를 새로이 파헤치기 위해 문화·문학·영화 전문가들의 강연도 진행한다.

- ‘우리의 계절’ 섹션에선 전남 지역의 청소년들이 만든 영화들을 상영한다.

= 전남영상위와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가 청소년 영화 제작 캠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전남 영상위 위원장인 최수종 배우가 10년 넘게 연기 수업도 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여주기에 이번 영화제가 좋은 기회 같더라. 지금 수도권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캠프 출신 친구들이 행사에 참여하기도 해서 더 뜻깊다. 또 장성군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남도 로컬프로그래머 양성 과정’ 에 참여해서 본인이 제자들과 직접 만든 영화를 상영한다. 이런 식으로 지역 영화문화, 영화 인프라의 자생력을 키우려 한다.

- ‘남도 로컬프로그래머 양성 과정’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전문가들이 와서 한해 영화제를 싹 치르고 나면 지역엔 남는 게 없지 않겠나. 영화제를 기반으로 해서 지역 인력도 키워야겠다고 느꼈다. 수강생은 광양, 순천, 곡성, 완도, 장성 등 전남 곳곳에서 모였고 학교 선생님, 농부, 작은 영화관 운영자 등등 직업도 다양하다. 2달 넘는 교육 기간을 거치며 상영작 선정과 배급사 협의, 프로그램 구성까지 마쳤다. ‘나와 남도’라는 주제로 특별섹션도 직접 운영한다. 이후에도 전남 여러 지역의 문화공간, 작은 영화관과 연계해서 이분들의 활동을 도우려 한다. 이외에도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 남도를 배경으로 하는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선정작들은 다음 영화제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남도 오리지널 같은 이름을 지어보려 한다.

-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또 있다면.

= 순천의 교류 도시가 프랑스 낭트다. 그래서 자크 드미 감독과 낭트를 엮은 자크 드미 기획전과 함께 토크 행사가 열린다. 국내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아론 카츠 감독의 작품들도 새로이 만나볼 수 있다. 대규모 공원에서는 ‘가든 시네마’ 섹션 작품 상영과 함께 프로듀서 250 등의 라이브 공연이 이뤄진다. 이외에도 모은영 프로그래머, 유운성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들이 정말 좋은 경쟁·비경쟁 작품과 프로그램 들을 꾸려 놨다. 상영작들을 꼭 살펴보면 좋겠다. 프리미엄 제한을 두진 않아서 최근 발표된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 5년 동안의 구상을 가지고 있다. 전남도청, 각 시와 긴밀하게 협의해서 차질 없이 진행을 준비 중이다. 뿌리가 깊게 박혀 있는 로컬영화제를 만들고 싶다. 영화제 초기부터 거창하게 국제영화제를 표방하거나, 외부 관광객을 끌어오기 위해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최우선 과제는 지역 사람들이 정말 좋아해주고 남도의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드는 일이다. 벌써 조금은 성공한 느낌이다. 워낙 남도에 이런 행사가 없었기에 주민들이 개최 전부터 들떠 있더라. 막 드레스코드는 어떻게 해야 하냐, 나비넥타이라도 매야 하냐면서 신나 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