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크리에이터’, 사색에 잠기기 딱 좋은 세계에서 선문선답
2023-10-11
글 : 김철홍 (평론가)

2065년, 지구에선 인간과 AI의 전쟁이 한창이다. AI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LA에 핵무기를 투하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혔던 10년 전 사건으로 인해 서방 국가 연맹이 지구상의 모든 AI를 제거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나 지구 어딘가에선 AI와 깊은 감정적 교류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AI의 창조자인 니르마타가 살고 있는 뉴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강대국의 눈을 피해 AI와의 공존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에 미국은 마침내 니르마타 암살을 계획한다.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를 위장 잠입시킨 뒤 조직원인 마야(제마 챈)를 정보원 삼아 니르마타의 정확한 위치를 캐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작전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임무 중 마야를 사랑하게 된 조슈아는 마야를 잃고 상심에 빠진다.

<크리에이터>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조슈아는 니르마타가 서구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무기를 파괴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또 한번 뉴아시아 땅을 밟게 된다. 아직 마야를 포기하지 못한 조슈아는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마야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데, 그 과정에서 니르마타의 무기가 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AI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치 이것이 인류로부터 무기를 지킬 수 있는 최고의 방어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이의 형태로 만들어진 무기는, 영화 속 인간과 영화 밖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인간들에게 ‘무엇이 인간적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크리에이터>는 최근 몇년간 발표된 인공지능을 다룬 근미래 배경 SF영화들 중 단연 돋보이는 매력을 가졌다. 무엇보다 내밀한 역사가 궁금해지는 고유한 세계관을 세련된 비주얼로 구현해낸 감독 개러스 에드워즈를 비롯한 연출진의 공이 크다. <듄>을 통해 오스카에서 각각 촬영과 편집상을 수상한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과 조 워커 편집감독, <그래비티>의 특수효과로 오스카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닐 코볼드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비주얼 장인들의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러닝타임 내내 눈을 사로잡는다. 그 위에 또 한명의 장인인 한스 치머의 장엄한 음악이 깔린다.

<크리에이터>가 머금고 있는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 이 탄탄한 기반으로 인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뉴아시아 지역은 과거 국가 정세와 맞물려 특정 동남아 국가에서 발생한 전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여러 방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SF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리즈물이 아닌 오리지널 SF영화의 등장만으로도 반가운 것이 사실이다.

“로봇이 아니라면, 넌 어떻게 만들어졌어?”

아직 몸도 지능도 아이인 AI 알피가 조슈아에게 하는 질문이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성질에 대해 알려줘야 할지, 아니면 인문학적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아이의 다음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당신은 대답할 준비가 되었는가?

CHECK POINT

<천상의 피조물> 감독 김지운, 2011

옴니버스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중 하나인 이 영화엔 깨달음을 얻은 승려 AI가 등장한다. 영화의 주요 서사도 그렇지만, 승려와 로봇의 묘한 조화가 <크리에이터>와 비주얼 면에서 공통점이다. 실제로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은 베트남 여행 중 본 승려의 모습에서 영화의 비주얼적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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