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닥터 슬럼프>로 유명한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는 2000년,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에 <샌드랜드>라는 제목의 만화를 연재했다. 예기치 못한 재난과 인간의 실수로 사막화가 된 ‘샌드랜드’에서 인간과 몬스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환상의 샘’에 관한 단서를 찾은 인간 마을의 보안관 라오는 악마들에게 샘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악마계의 왕자 베르제브브와 그의 부하 중 한명인 시프가 동행을 결정하는데 빌런인 대장군 제우가 이를 못 마땅히 여긴다. 23년이 지난 현재,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가 창조해낸 <샌드랜드>의 세계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다. 원작의 유머와 정의에 대한 고찰을 그대로 옮겨오면서도 영상이 표현할 수 있는 액션의 현실감은 극대화했다. 한국 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샌드랜드>와 함께 요코시마 토시히사 감독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 원작 <샌드랜드>에 관해 원래 알고 있었나.
=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을 굉장히 존경해서 <드래곤볼>과 같은 작품들을 꾸준히 읽어왔지만 사실 <샌드랜드>는 내게 작품 의뢰가 오기 전까진 잘 알지 못했다. <주간 소년 점프>를 즐겨보다 잠시 등한시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샌드랜드>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될 시점이었다. 만화를 읽은 뒤 첫째로 느낀 감상은 캐릭터 배치가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인간과 악마가 주인공인데 무엇보다 악마가 우리가 상상하는 고정관념 속의 악마가 아니었다. 특유의 세계관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이 <드래곤볼>을 연재하신 뒤 시작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이 선생님께서 진실로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 유명 작가의 코믹스를 영상화하게 된 만큼 기대와 부담이 동반됐을 것 같다.
= 거장의 작품이라 불안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3D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토리야마 선생님의 캐릭터를 3D로 움직이게 하는 건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도전했다.
- 원작은 단행본 한 권 분량이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특정 부분을 추가하거나 덜어내기도 했나.
= 단행본 한 권이라고 하면 다들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기엔 적당하지 않냐고들 한다. 하지만 원작의 대사량이 상당하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대사를 많이 줄여야 했다. 관객 시점에서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도 고려했다. 원작 만화는 베르제브브의 시점에서 그려지지만 애니메이션은 인간 보안관 라오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도입부부터 관객들이 라오와 같이 모험을 시작하면서 세계를 구하는 감각을 체험할 수 있게끔 했다. 토리야마 선생님께서 지향하는 지점이 <드래곤볼>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래서 초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엉망진창으로 엉켜 야생감이 넘치게 싸우는 장면들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초인들이 아닌 인간들끼리 싸우며 결말이 지어지는 흐름을 만들고자 했다. 이런 게 원작과 달라진 지점이다.
- 원작자인 토리야마 아키라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샌드랜드>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에 관해 크게 칭찬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사용된 기술과 전반적인 제작 과정을 소개해준다면.
= 토리야마 선생님이 만화를 통해 잘 표현하려고 하셨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차다. 토리야마 선생님은 전부 손으로 그리긴 하셨지만, 3D로 전차를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적합하다고 느겼다. 그래서 전차와 전차 간의 액션 신을 공들여 표현하려고 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직 3D 애니메이션이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의 표현력을 쫓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3D 애니메이션의 위화감을 많이 줄이려고 했다.
- 베르제브브와 라오 등 주요 캐릭터들을 표현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나.
= 베르제브브의 경우는 악마라 타고난 신체 능력 자체가 인간과 많이 다르다. 그런 차이를 드러내면서 액션을 코믹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라오는 전차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그런 부분을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모션 캡처를 사용했다. 반면 라오는 얼굴에 거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반대로 베르제브브가 마치 인간처럼 표정 변화가 더 크고, 동물적인 본능에 따라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로 설정했다.
- <샌드랜드>의 등장인물들 중 연출자로서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
= 대장군 제아 아래에서 일하는 아레 장군에게 마음이 많이 간다. 그래서 그가 군 내부의 비밀을 폭로하고 배신하면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장면을 좋아한다.
- 정의로운 캐릭터라 마음이 가는 건가.
= 정의로워서라기보다 그가 가장 어려운 판단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주 젊은 나이에 한 조직에 소속돼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게 그 명령이 옳지 않을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아레 장군은 이것을 정말 잘 헤쳐 나가지 않나. 본래 자신이 지닌 정의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는지, 의심이 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이 작품의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 <샌드랜드>를 통해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한 소감은.
= 지금 내가 소속된 회사인 카미카제 도우가는 게임 오프닝이나 뮤직비디오와 같은 짧은 분량의 영상을 많이 만드는 편이다. 때문에 줄거리가 있는 작품을 만들 기회가 많지 않았다. 10년 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더 이상 못 하겠다’고 결심하고 퇴사하려던 시점에 사장님의 권유로 45분짜리 중편 <코컬러스>를 제작한 적이 있다. 이것을 계기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을 회복했고, 그 뒤로 스토리가 있는 장편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 그래서 내게 <샌드랜드>를 애니메이션화할 기회가 온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매순간이 즐겁다고만은 할 수 없다. (웃음) 하지만 원래 하던 대로 짧은 영상들을 제작하면서 또 다른 장편을 만들기 위해 틈틈이 준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