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모두들 여기에 함께 있다면, ‘너와 나’ 조현철 감독
2023-10-26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희고 투명한 이야기의 그물을 세상에 던진 조현철은 자신이 경험한 죽음의 공포와 투병 끝에 떠난 아버지의 통증, 사회적 참사와 재해로 희생된 여러 이름들이 끊임없이 하나되는 우연을 건져 올렸다. 상대의 고통이 절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의 아득함을 아는 창작자는 <너와 나>에서 그 절망을 절박한 사랑으로 바꾸어 쓴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를 겹쳐내는 꿈이다.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공존이 영화가 보존하는 시간 속에서 영원히 지속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D.P.> 시리즈로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탄탄히 구축한 조현철은 이미 오래전 단편영화 <척추측만>(2010)에서부터 소외된 표정을 비추는 재능 있는 감독이었다. 숙려의 시간을 갖고 성숙해진 손길로, 그는 이제 이름 없는 무수한 슬픔을 쓰다듬어본다.

- 영화를 기획하고 세상에 내놓기까지 근 7년이 걸렸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태도, 그와 결부된 무수한 말들을 관통하면서 창작의 흔들림은 없었나.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기보다는 언제나 특정한 개인에게 말을 건다는 느낌으로 생각하고 작업한다. <너와 나>는 나로서 세미와 하은이에게 계속해서 다가가는 방식이었다. 개봉 후 바라는 것은 이 영화가 비슷한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확히 가닿는 것이다.

- 허구와 현실이, 꿈과 리얼리티가, 너와 내가 부유하듯 교차하는 내러티브를 완성하기까지 창작자 개인이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하다.

말로 옮기기가 이상할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일들이 집약적으로 일어났던 시기로 기억된다. 목포에 가서 세월호를 직접 보고 유달산으로 향하던 길이었나, 우연히 들른 카페의 이름이 ‘너와 나’였다. 이미 책 제목을 <너와 나>로 정한 시점이었다. 그저 그런 우연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그땐 그런 신기한 우연들이 유독 잦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마주한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내가 왜 지금 이런 시나리오를 쓰려는지,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계속해서 일기를 썼다.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이면이나 우연 안에 숨겨진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엮어볼 수 있었다. 하나의 여행 같은 것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너와 나>를 쓰는 동안 한곳에 있지 못하고 많이 돌아다녔다.

- 마치 시상을 채집하듯 쓰여진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화면을 집어삼킨 희뿌연 섬광, 먹다 만 사과와 테이블에 걸쳐진 유리잔처럼 특정한 오브제, 고여 있는 시공간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배열해나갔나.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다닐 때부터 시각화에 대한 확신이 안 생기면 이야기를 진행해나가기 힘들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학교나 학원에 나가 강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만나보려 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하여. 하루는 교실 창밖으로 아이들이 원반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의 시작이 반드시 이 장면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포획되는 순간을 잘 붙잡아두려 한다. 어떤 사물을 보여줄 때도 상징적 의미보단 거기 얽힌 이야기를 생각한다. 화면 안에 남겨진 먹다 남은, 그런데 아직 갈변하지 않은 사과를 예로 들어보자.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사과를 베어 물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얼마 전까지 여기 있었다는 말이 된다.

- 세상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있는 듯한 눈부시게 부드러운 질감의 화면을 구사한 이유는.

개봉을 앞두고 살짝 누르기는 했다. (웃음) <영시>에서 함께 호흡 맞췄던 촬영감독(DQM, 정다운)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내가 전달한 부분은 번쩍이듯이 화면 안으로 이따끔씩 틈입하는 하이라이트였다. 한편 스타일만큼이나 카메라 뒤편에서 촬영하는 이들의 태도에 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커스틴 존슨의 다큐멘터리 <카메라퍼슨>의 도움을 받았다. 현장 시스템에 있어서도 관습적인 것에 대한 내 본능적인 반감을 깎아내지 말고 새로움을 추구해보고 싶었다. 연출부의 성비 균형을 맞췄고, 경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하려고 했다. 그렇게 팀을 꾸리자 영화 찍는 일이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게 됐다. <너와 나>는 내게 ‘좀더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현장이었다. 그것에 감사한다.

- 잃어버린 개를 찾는 것이 <너와 나> 서사의 표면적인 전환점이 된다. 우선 카메라가 컨테이너 속에 갇혀 있는 여러 마리의 개들을 보는 숏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너와 나>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가슴 아픈 이미지가 아닐까.

갇혀 있는 개들의 모습이 꼭 세미인 것 같기도 하고, 하은이인 것 같기도 했다. 컨테이너 장면의 콘티를 그릴 때 의도적으로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세미와 하은을 나눠놓았다. 세미에게 보이는 것을 하은은 처음에 볼 수 없도록.

-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엄청난 상실의 자리를 비추는 영화이다. 만드는 과정 역시 기성적 방법론에 대한 일종의 반항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지향하는 세계엔 분노나 절망보다 사랑이 넘친다. 당신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나.

나 자신이 죽음에 대해 체감할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내가 느꼈던 똑같은 감정, 그만한 깊이의 공포가 그동안 이름이 불리지 않은 수백명의 사람들 하나하나 속에 다 깃들어 있었겠다고 느낀 순간부터 <너와 나>를 쓸 수 있었다. 그 많은 죽음의 의미를 허무하게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 사람들의 삶을 호명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되살려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자 영원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건 결국 우리가 무언가 사랑하고 있다고 느낄 때만 가능한 것 같았다.

- 죽음의 공포를 느낀 그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나.

내게 안도감을 주는 아주 사소한 것들을 떠올렸다. 작은 햇빛이라든가 친구의 다정한 목소리. 달그락거리는 일상의 소음. 아주 세세한 곳에 사랑이 맺혀 있었다.

-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에서 병상의 아버지에게 먼저 죽은 이들도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고 전했다. 얼마 못 가 부친의 부고가 있었다.

무대에 섰을 때가 아빠의 통증이 가장 심해졌을 무렵이었다. 당신 또한 아마 가장 무서운 시기였을 테지. 나는 조금이라도 아빠를 안도시키고 싶었다. 그게 첫 번째였고, 또 하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수많은 죽음들을 접하면서 고 박길래, 변희수, 김용균, 이경택님 같은 분들의 이름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소명이라기엔 거창하고, 그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이것이라고 느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으니 조금이라도 쓰다듬고 싶었다.

- 잃어버린 개를 찾는 모험을 마치고 간밤의 꿈을 기억해낸 세미가 하은에게 전하는 대사, “내가 네가 되어서 깨어났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가 아프실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의 몸을, 저 통증을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나의 생각일 뿐이고 실은 전혀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박준혁군이 참사 당시에 물속에서 옆반 여학생의 손을 잡고 있다가 구하지 못했는데, 이후 꿈에서 자신이 그 여학생이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미가 하은이가 되는 꿈을 꾸는 것, 혹은 그 반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무렵 떠올렸다.

- 세미와 하은의 이름은 어떻게 정했나.

한참 아이들을 만나고 다닐 때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의 실제 이름이다. 허락을 받고 썼다.

- 그때 만난 10대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준 적 있나.

한번은 아이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모두들 좋은 소리만 해주어서 오히려 여과해 들으려고 했다. 초고 단계에서는 후반부에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내용들이 모두 빠져 있었기 때문인지 더더욱 이야기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뉘앙스를 많은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러 피드백을 접하면서 후반부 납골당 장면을 넣게 됐고,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내용은 촬영할 때까지도 계획에 없었다가 편집 과정에서 더했다. 연출하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스스로 질문한 지점이었다. 무언가 직접적으로 드러낼수록 윤리적으로 누군가를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고민했다. 마지막 결정은 영화가 관객에게 가닿기 위해서는 일종의 서사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데 방점을 뒀다.

- 하은의 별명은 왜 훔바바일까.

단순하게는 내 친구의 아이디였다. 나중에서야 훔바바가 길가메시의 서사시에 나오는 삼나무 숲을 지키는 요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근 리처드 파워스의 장편소설 <오버스토리>를 읽 었다. 나무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이 책을 읽고 실제로 삼나무 숲에 찾아가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어느 날 제주도에서 큰 숲이 죽어가는 꿈을 꾼 뒤에 제주에 깃든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고,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난 거였다. 처음 <너와 나>를 끌고 왔던 방식과 비슷하게 요즘 다시 어떤 우연들이 맞물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다음 작업을 차근차근 준비해가야 할 과정 속에 다시 놓인 게 아닐까 싶다.

- 다음 영화는 4·3 사건을 다룬다고 알고 있다.

숲이라는 큰 우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여름 한달 동안 제주에 다녀왔다. 새 작업에선 더 명확하고 냉철한 방식으로 관찰하면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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