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새바람은 부는가’, 여름, 추석 극장가 포스트 르네상스 세대의 약진
2023-10-27
글 : 이우빈
<잠>

올해 여름과 추석 한국영화 시장엔 한 가지 고무적인 소식이 있었다. 신진감독들의 유의미한 약진이다. 단편 <숲>에서부터 탄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엄태화 감독은 첫 텐트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의 김성식 감독은 첫 장편으로 추석 시장에서 준수한 흥행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여름과 추석 극장가를 살짝 비껴간 두편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올해 칸에서부터 동행하며 비평적 성과를 거둔 유재선 감독의 <잠>과 김창훈 감독의 <화란>은 그들의 첫 장편이다. <잠>은 146만 관객을 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이에 누군가는 이른바 한국영화 감독의 세대교체 조짐을 언급한다. 기성세대의 논리가 아닌 젊은 감각을 견지한 영화 창작자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영화의 성패를 감독의 나이나 경력으로만 판가름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단적으로 올해 여름과 추석 극장가의 최종 승자는 업계 베테랑인 류승완 감독의 <밀수>였다. 한해 흥행 결과의 일면이나 생물학적인 나이로 거창한 교체론을 말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잠>을 제작한 루이스픽쳐스의 김태완 대표는 “영화감독이 운동선수도 아닌데 30대를 넘긴다고 좋은 영화를 못 찍는 건 아니다. 교체라는 표현부터가 섣부른 말”이란 의견을 피력했다. 더하여 “영화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경력 단절을 거쳤기에 그간 유입되지 못한 신인감독들이 올해 모습을 드러낸 것뿐”이라고 일축했다. 제작자 A씨도 “신인감독은 매년 나온다. 올해도 그 숫자는 예년과 비슷했다. 신인감독들의 동향이 어떠한지 분석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결국 시장에선 신구 조화가 잘 이뤄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진감독들의 성과를 이전 세대와의 단절처럼 재단하고 좁게 봐선 안된다. 20년 전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자양분을 잘 흡수한 세대의 개성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흐름이라고 크게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엄태화, 유재선, 김성식 감독은 류승완,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의 영화에 제작진으로 참여했던 이들이다. 한국영화 르네상스 세대의 영향을 바로 옆에서 먹고 자란 포스트 르네상스 세대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는 증거다.

창작자 개인 범위에 한정된 논의보다는 기획, 투자, 제작 단계의 전방위적 변화가 근원적이고 시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천박사>를 제작한 외유내강의 김현식 PD는 “업계가 원하는 검증 절차로 인해서 제도 바깥의 신선한 인력이 주류로 입봉하기엔 어려운 현실”이라며 “김성식 감독처럼 신진감독들이 진입하고 빛을 발하길 바라지만, 시장 논리가 쉽지 않다”라고 밝혔다. 20년 넘는 경력의 제작자 B씨는 “화가의 재능이 꽃피려면 먼저 좋은 화구를 사주는 화상의 혜안과 용기가 필요한데, 기성 영화 투자자들은 아직 리스크 헤징에만 집착한다. 완전히 무용하다고 밝혀진 스타 감독, 배우의 캐스팅이나 낡은 주제만을 원한다”라며 외부 요인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관습에 매몰된 업계의 내부 프로세스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색다른 소재와 영화 문법으로 주목받았던 <잠>은 기획, 투자 단계의 관습을 깨며 탄생한 작품이다. 제작자 김태완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영화업계 동결로 인해서 투자배급사를 거치지 못하고 직접 외부 투자자와 접촉했다. 이에 그는 “좋은 영화라는 확신으로 발품을 팔았기에 신인감독의 작품이지만 순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영화계 자본시장의 전통적인 관습을 제작자들이 돌파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2023년 여름과 추석 한국영화계가 깊은 침체를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속에서도 이전 세대와의 연결에 기반한 포스트 르네상스 세대 창작자들의 가시적인 약진, 그리고 기획·투자·제작 종사자들의 고착을 탈피하려는 의지도 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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