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로르 칼라미)는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시종 따스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을 바라보고 보듬는 평범한 이웃이다. 그런 애니에게는 16살 난 딸과 9살 된 아들,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 매트리스 공장에서 퇴근한 뒤 찾아간 한적한 서점 뒤편 공간에 여인들이 하나둘 모이면 그제야 비로소 이들이 무엇을 위해 한자리에 서로 마주 앉아 있는지 알게 된다. 임신 중지가 불법인 프랑스에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서점을 찾아온 이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임신 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단체인 MLAC 소속이다. 더이상 출산을 원치 않았던 애니는 MLAC의 도움을 받은 후, 또 다른 여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다.
임신 중지를 다루지만 <앵그리 애니>는 크리스티안 문주식의 냉담한 고발과도 스크린 위에 펼쳐진 아니 에르노의 충격적 자기 고백과도 다르다. 적나라한 현실로 침묵하고 숙연하게 만드는 대신, 일련의 사태처럼 반복되는 개인사와 공동체적 연대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애니는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바꾸고 싶었던 그의 뜨거운 마음이 슬픈 분노에 가깝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