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리딩 연습을 하던 배우들은 대사를 뱉는 데 부침을 겪는다. 때마침 지나가던 남자(김영민)가 배우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 그 남자는 그저 지나가던 행인이라고 하기엔 필름이 소실되고 자료도 찾아보기 힘든 영화감독의 생전 작업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배우들은 그 남자를 예술감독으로 생각하고 낭독극 연습을 함께한다. 남자의 조언을 따르니 대본 리딩은 일사천리로 수월하게 진행된다. 시나리오를 낭독하는 배우들도,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도, 축음기 잡음과 함께 옛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시절로 완전히 빠져든다.
1966년 작고한 영화감독 노필의 남겨진 시나리오로 낭독극이 기획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공연은 취소되고 공연기록물을 남기려는 아이디어는 낭독극을 영화로 촬영하는 프로젝트로 전환되어 탄생한 것이 <붉은 장미의 추억>이다. 낭독극이 연극보다 재미를 줄 수 있는 건 배우도 청중도 모두 ‘말맛’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말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직업군을 제외하면 사용하지 않는 국어의 장음과 단음, 사라진 단어들, 복고 뉘앙스의 대사가 한줄 한줄 쌓여감에 따라 <붉은 장미의 추억>의 러닝타임도 함께 흘러가는 게 아쉬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