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두천> <소요산> <아메리칸 타운> 후반작업에 각각 1년 가까이 걸렸다. 작품별로 가장 핵심이 되는 시각효과로서 어떤 것에 중점을 뒀나.
= 말 그대로 키 이펙트가 있었고 그건 감정에 얽힌 것이었다. <동두천>에선 시신이 없는 방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이미지가 가장 중요했다. 여성 신체 이미지에 대한 착취 없이 어떻게 폭력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장면이다. <소요산>은 마지막에 큰비가 내리는 장면을 CG로 구현했기 때문에 비를 표현하는 데만 9개월이 걸렸다. 처음 낙검자 수용소에 갔을 때 느낀 감정은 공포라기보다는 고통에서 오는 슬픔이었고, 이곳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가 어떤 기운으로 전해져왔다. 재개발 소식을 접한 상태에서 시작한 <아메리칸 타운>은 촬영하는 일이 타인의 고통을 두번 건드리는 일이 될까봐 가장 괴로웠던 작업이다. 타자화를 경계했기에 현재와 과거의 시차가 만들어내는 괴리를 작중에서 더욱 부각했다. 앞선 영화들이 감각과 감정에 집중했다면 <아메리칸 타운>은 이성적이고 언어적인 접근이 되길 바랐다.
- VR 3부작을 관통하는 동안 관객인 나의 시점이 누구의 것인지 질문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근작인 <아메리칸 타운>으로 올수록 목격자로서 거리감을 확보하게 되는 것 같다.
= 영화를 본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일이다. 헤드기어를 쓰면서 느낀 모든 생각, 사유, 희로애락은 이런 참여의 일환이지만 벗었을 때 현재로 돌아온다는 사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로 이 점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상기시키고자 했다. <아메리칸 타운> 마지막에 영화 속 인물이 우리에게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처럼. 다만 나는 이런 경험의 반복이 어떻게든 잔상과 기억으로 남아 의식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만은 믿는다. 기지촌, 미군 위안부 여성이라는 현안에 붙은 굉장히 도식적인 도그마와 슬로건을 벗어나는 감각에 기입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장소를 재현의 중심에 둔 이유가 비단 VR의 특수성 때문만은 아닐 듯싶다. 함부로 동질감을 말하는 것이 저어되지만, 자신의 신체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여성의 감각만큼은 근원적인 주제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 작품 속 논밭 풍경만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는 분이 있는데 아마도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여성은 누구나 자기 몸과 대결하는 시기를 거친다. 내가 과연 여기에 있는 건가, 이 몸을 차지한 채로 정말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건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과 자아가 내는 불협화음이 너무나 큰 과정을 겪으며 내재되는 감정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무엇이다. 나는 미군 위안부 3부작이 후기 식민지 사회에서 한국이라는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장소에 태어난 여성에게 강제되는 최대치의 소외를 겪은 분들의 삶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감각이 어마어마한 고통으로 증폭된 경우라고 말이다.
- 올해 <아메리칸 타운>이 베니스국제영화제 VR 경쟁부문에서 주목받았다. 차기작 계획은 어떤가.
= 베니스에서 들은 가장 격려가 된 말은 내 작업이 새로운 기술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평가였다. 다만 VR 작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점치긴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격타를 입은 뒤 이쪽은 더더욱 헤드기어를 소장한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비디오게임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당분간은 극영화로 돌아가 새 작업에 집중하되 AR, XR 작업은 길게 보고 꾸준히 하면서 사라지는 공간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에 방점을 찍으려 한다. 가장 가까운 차기 프로젝트로는 황석영 소설가의 작품을 각색한 <바리데기>가 될 것 같다.